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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8년]] [[봄]], [[수도]]를 [[웅진]]에서 "[[사비 (지명)|사비]]"로 옮기고, 국호를 [[부여|남부여]]라 하였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26/성왕|본기 권26 성왕]] |인용문= <!--十六年 春 移都於泗沘 一名所夫里 國號南扶餘 (16년(538년) 봄에 서울[都]을 사비(泗沘)<다른 이름은 소부리(所夫里)였다.>로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南扶餘)라 하였다. )-->}}</ref> 540년 9월에 왕은 장군 연회(燕會)에게 명령하여 고구려의 우산성(牛山城)을 공격하게 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26/성왕|본기 권26 성왕]] |인용문= <!--十八年 秋九月 王命將軍燕會 攻高句麗牛山城 不克 (18년(540) 가을 9월에 왕은 장군 연회(燕會)에게 명령하여 고구려의 우산성(牛山城)을 공격하게 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ref> (541년)에 왕이 사신을 양나라에 보내 조공하고, 아울러 표를 올려 모시박사(毛詩博士)와 열반(涅槃) 등의 경의(經義; 경서) 및 공장(工匠)과 화사(畵師) 등을 청하여 양나라의 허락을 받았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26/성왕|본기 권26 성왕]] |인용문= <!--十九年 王遣使入梁朝貢 兼表請毛詩博士·涅槃等經義幷工匠·畵師等 從之 (19년(541년)에 왕이 사신을 양나라에 보내 조공하고, 아울러 표를 올려 모시박사(毛詩博士)와 열반(涅槃) 등의 경의(經義) 및 공장(工匠)과 화사(畵師) 등을 청하였더니 [양나라에서] 이를 허락하였다. )-->}}</ref> 548년 정월에 고구려 양원왕이 예(濊)와 모의하여 한강 북쪽(한북, 漢北)의 독산성(獨山城)을 공격해오자 성왕은 신라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였다. 신라 진흥왕은 장군 주진(朱珍)에게 명하여 갑옷 입은 군사 3천 명을 거느리고 떠나게 하였다. 주진이 밤낮으로 길을 가서 독산성 아래에 이르러 고구려 군사와 한 번 싸워 크게 격파하였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26/성왕|본기 권26 성왕]] |인용문= <!--二十六年 春正月 高句麗王平成 與濊謀 攻漢北獨山城 王遣使請救於新羅 羅王命將軍朱珍[3] 領甲卒三千發之 朱珍日夜兼程 至獨山城下 與麗兵一戰 大破之 (26년(548) 봄 정월에 고구려 왕 평성(平成)[양원왕]이 예(濊)와 모의하여 한강 북쪽[漢北]의 독산성(獨山城)을 공격하였다. 왕은 사신을 신라에 보내 구원을 요청하였다. 신라 왕은 장군 주진(朱珍)에게 명령하여 갑옷 입은 군사 3천 명을 거느리고 떠나게 하였다. 주진은 밤낮으로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독산성 아래에 이르러 고구려군을 크게 무찔렀다. )-->}}</ref> 549년 10월에 성왕은 양나라의 건강(建康)에 후경(侯景, ? ~ 552년, 양의 장군)의 난이 있었음을 알지 못하고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사신이 이르러 이미 황폐하고 허물어진 성(城)과 대궐을 보고 단문(端門) 밖에서 소리 내 우니, 길을 가던 사람들이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었다. 후경은 이를 듣고 크게 노하여 사신 일행을 모두 잡아 가두어 버렸다. 그 후 후경의 난이 평정되고 그들은 비로소 환국할 수 있었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26/성왕|본기 권26 성왕]] |인용문= <!--二十七年 ... 冬十月 王不知梁京師有寇賊 遣使朝貢 使人旣至 見城闕荒毁 竝號泣於端門外 行路見者 莫不灑淚 侯景聞之大怒 執囚之 及景平 方得還國 (27년(549) 봄 정월 경신에 흰 무지개가 해를 관통하였다. 겨울 10월에 왕은 양나라의 서울[京師]에 반란[寇賊]이 있었음을 알지 못하고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사신이 이르러 성(城)과 대궐이 이미 황폐하고 허물어진 것을 보고 모두 단문(端門) 밖에서 소리내어 우니, 길을 가다가 보는 사람이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었다. 후경(侯景)이 이를 듣고 크게 노하여 잡아 가두었는데, 후경의 난이 평정되어서야 바야흐로 환국할 수 있었다. )-->}}</ref> [[불교]]를 진흥했으며 [[중국]]의 [[남북조 시대|남조]]와 활발하게 교류하여 [[일본]]에 [[불교]]를 전파하기도 했다. 550년 정월에 왕은 장군 달기(達己)를 보내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고구려 도살성(道薩城)을 공격하여 빼앗았다. 3월에 고구려 군사가 금현성(金峴城)을 포위하였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26/성왕|본기 권26 성왕]] |인용문= <!--二十八年 春正月 王遣將軍達已 領兵一萬 攻取高句麗道薩城 三月 高句麗兵圍金峴城 (28년(550) 봄 정월, 장군 [[달기]](達己)에게 군사 1만을 주어 고구려 도살성(道薩城)을 함락시켰다. 그러나 같은 해 3월 고구려 군사가 금현성(金峴城)을 포위, 공격하였다. )-->}}</ref>[[고구려]]의 내정이 불안한 틈을 타서, 나제 동맹을 맺은 신라와 백제는 고구려의 한강 상류 유역을 공격하여 점령하였다(551년) .<ref>{{서적 인용 |제목=[[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장=[[: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사/고대사회의 발전/삼국의 성립과 발전/신라의 발전#신라의 건국과 발전〔槪說〕|신라의 건국과 발전〔槪說〕]] |연도= 2004|출판사=도서출판 범한 |인용문=<!--551년(진흥왕)에는 백제와 더불어 북진하여 한강 상류 지역을 점령하였다.--> }}</ref> 신라는 10개의 군을 얻고 백제는 6개의 군을 얻었다. 신라 진흥왕은 함경남도, 함경북도까지 진출하여 순수비를 세우며 세를 넓혀갔지만, 고구려는 돌궐과의 전쟁으로 신라의 영토 확장에 대응할 수가 없었다. 이때 백제는 신라에게 고구려 평양성 협공을 제의하였고, 고구려는 경기도, 황해도, 한반도 북서부 등 진흥왕이 새로 개척한 땅을 신라 땅으로 용인해 주는 대신, 수도 평양성으로 진군하지 말 것을 제의하였다. 진흥왕은 백제의 제의를 거절하고 고구려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신라는 경기도, 황해도, 한반도 북서부로 영토를 확장하고 백제로 진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백제가 화해를 원하므로 진군을 멈추었다. [[553년]] [[음력 7월]], 백제는 고구려로부터 회복한 한강 유역의 대부분을 [[신라]]에 빼앗기고,<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26/성왕|본기 권26 성왕]] |인용문= <!--三十一年 秋七月 新羅取東北鄙 置新州 (31년(553) 가을 7월에 신라가 동북쪽의 변경을 빼앗아 신주(新州)를 설치하였다. )-->}}</ref><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진흥왕|본기 권4 진흥왕]] |인용문= <!--十四年 ... 秋七月 取百濟東北鄙 置新州 以阿湌武力爲軍主 (14년(553년) ... 가을 7월에 백제의 동북쪽 변두리를 빼앗아 신주(新州)를 설치하고 아찬 무력(武力)을 군주로 삼았다. )-->}}</ref> 신라에 포위되었다.<ref>{{서적 인용 |제목=[[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장=[[: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사/고대사회의 발전/삼국의 성립과 발전/신라의 발전#신라의 건국과 발전〔槪說〕|신라의 건국과 발전〔槪說〕]] |연도= 2004|출판사=도서출판 범한 |인용문=<!--553년에는 백제가 점령하였던 한강 하류 지역을 탈취하여 백제를 포위하였다. 이러한 신라의 팽창은 낙동강 유역과 한강 유역의 2대 생산력을 소유하게 되어, 백제를 억누르고 고구려의 남진 세력을 막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천만(仁川灣)에서 수·당(隨唐)과 직통하여 이들과 연맹 관계를 맺게 되어 삼국의 정립을 보았다.--> }}</ref> 음력 10월에 왕녀를 [[신라]]의 [[진흥왕]]에게 시집보냈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26/성왕|본기 권26 성왕]] |인용문= <!--三十一年 ... 冬十月 王女歸于新羅 (31년(553년)... 그 해 겨울 성왕의 장녀, 소비공주가 진흥왕의 후궁으로 신라에 보내졌다. )-->}}</ref>
 
[[554년]] [[일본]]에서 병사를 모으는 한편, [[위덕왕|왕자 창]](昌):27대 [[위덕왕]](威德王)과 함께 군사를 동원하여 [[신라]] 공격에 나섰다. 하지만 [[신라]]의 [[고간]] 도도에게[[도도]]에게 살해당하였다.
 
== 사망에 대한 이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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