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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구치 요시코'''({{llang|ja|山口淑子}}, [[1920년]] [[2월 12일]] ~ [[2014년]] [[9월 7일]]<ref>[http://www.jiji.com/jc/c?g=soc_30&k=2014091400041&j4 山口淑子さん死去=女優「李香蘭」、政治家として活躍-94歳 (일본어)]、jiji.com、2014년 9월14일</ref>)은 [[만주]](현재 중국 대륙 동북부)에서 출생한 가수, 배우이다. 2차 대전 전에는 '''리향란'''({{lang|zh|李香蘭|Lǐ Xiānglán}}, '''리샹란''')이란 예명의 이름으로 살았다. 원적지는 [[일본]] [[사가현]] [[기시마 군|기시마]]이다. [[1940년대]] [[중국]] [[칠대가성]] 가운데 한 사람이다.
 
원래는 일본인으로 부친의 친구가 지어준 이름으로 가수 생활을 시작했고, 항전 기간 동안 만주국에서 사람들에게 이용 받아 [[만주국]] 찬양, [[군국주의]] 미화, 대동아 공영 등의등에 목적을 둔 노래를 불러불렀다. 좋은때문에 실력이라노래 평받았으나,실력에 세간에관하여 극찬을 받는 한편 [[한간]]이라는 세간의 좋지 않은 시선을시선까지 받았고동시에 특히받았다. 양심있는그래서 특히 중국의 지식인과 민중들의 반대를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중국 가요사 및 이후 중화권 노래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영향을 남겼다.
 
대전 후에는 [[한간]]으로 몰려 사형에 처해질 뻔하였으나 본래 [[일본인]]이라는 것이 밝혀져(따라서 이향란은 한간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호적을 정정하고 일본에 귀국했으나귀국하였다. 처음엔그러나 처음에는 중국인으로 판정되어 입국을 거부당했다. 그러나거부당했고, 친구의 도움으로 베이징의 양친에게 [[호적]]을 받아 일본인임이 증명되어증명, 입국하였다. 이후 가수 생활도 했으나, 주로 영화배우로 활약했다. 1974년, 1980년, 1986년에는 [[참의원 (일본)|참의원]]에 선출되어 의정활동도 하였다. 정계은퇴후,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 기금]] 부이사장을 맡았다.<ref>[http://www.awf.or.jp/pdf/news_18.pdf 大鷹淑子副理事長に聞く「21世紀のいま、若い人々に伝えたいこと」 (일본어)]、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 기금、2001년 12월20일</ref>
 
== 소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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