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전랑: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태그: m 모바일 웹
편집 요약 없음
태그: m 모바일 웹
3번째 줄:
'''이조 전랑'''(吏曹銓郞)은 [[조선]] 시대에 [[이조]]의 [[정랑]](정5품)과 [[좌랑]](정6품)을 함께 이르던 말이다. 이조의 정랑과 좌랑은 관원을 천거·전형(銓衡)하는 권한을 가진 직책으로 '''전랑'''(銓郞)이라고 불렀다.
 
조선 시대에는 관원을 선발하는 벼슬이 3공(고려 시대의 태위(太尉)·사도(司徒)·사공(司空))에게 있지 않고 오로지 이조에 속하였다. 그런데 왕권과 유력 신권을 견제하는 장치로 [[삼사(三司)]] 있었는데, 이 삼사의 관원선발도 이조에서 담당하였다. 그러나 이조판서의 권한이 지나치게 무거워짐을 막고자, 삼사 관원의 선발은 판서보다 낮은 직급인 낭관(정랑과 좌랑)에게 맡겼다. 이에 따라 이조의 낭관이 삼사의 언론권을 주관하게 되어 큰 실권을 잡았다.
 
전랑에는 삼사 가운데 특별히 명망높은 사람이 선발되었고, 그 후임은 전랑이 추천하도록 되어 있었으며, 전랑을 거치면 대개 재상까지 될 수 있었다. 동서분당을 초래한 [[심의겸]](沈義謙)과 [[김효원]](金孝元)의 싸움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