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위안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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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우 ===
[[한국전쟁]] 이후 한국의 산업은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이 무렵 미군 위안부는 궁핍한 삶 속에서 어떻게든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일부 여성들이 선택했던 생계수단이기도 했다{{출처|날짜=2015-08-01}}.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기지촌 미군 위안부의 상당수는 인신매매되어인신매매를 통해 끌려온 [[미성년자]]들이었다.<ref name="한겨레20140815a">[http://www.hani.co.kr/arti/SERIES/397/651360.html 미군 위안부, 우린 일본 우익 망언에 당당한가] [[한겨레]] 2014.08.15</ref> 인신매매로 끌려온 여성들에게이들에게 행해진 인권유린은 무척무척이나 참혹했다. 인권유린의 단적인 예로 인신매매로 팔려 온 여성피해자 중 한 명이 기지촌을 탈출해 경찰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도움을 요청받은 경찰 당사자 본인이경찰이 탈출한 여성을 직접 도로 포주에게 데려간 사건이사건도 있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특별한 사례가 아니었다.<ref name="여성신문20140812">[http://www.womennews.co.kr/news/74596#.VBmb2HlxmUk ‘미국 위안부’를 아십니까?] 여성신문 2014-08-12</ref> 고향을미군 떠나위안부 한국에 배치되었던중에는 미군 병사들과 미군 위안부들은 연인으로까지 발전되어 연을 맺고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성공한 삶을 사는 경우도 간혹 있었으나, 대부분 미군 위안부들은 단지 미군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고 심지어 [[병사]]에게 [[살해]]당하거나, [[자살]]하는 여성도 여럿 있었다.<ref name="joong20050731">[http://koreajoongangdaily.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x?aid=2600608 Openly revealing a secret life] {{웨이백|url=http://koreajoongangdaily.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x?aid=2600608 |date=20130619000725 }} [[중앙일보]] 2005.07.31</ref>
[[파일:Camptown clean up campain signed by President Park Chung-hee in 1977.jpg|섬네일|왼쪽|1977년 5월 2일 [[박정희 대통령]]이 [[서명]]한 기지촌정화대책.<ref name="한겨레20131106">[http://www.hani.co.kr/arti/society/women/610074.html ‘기지촌 여성 관리’ 박정희 친필 서명 문건 공개] [[한겨레 신문]] 2013.11.06</ref><ref name="경향신문20131106"/>]]
[[1961년]] 11월 9일에 [[대한민국 정부]]는 [[윤락행위 등 방지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모순적으로 성매매를 허용하는 특수 지구를 여럿 설치했고, 이 중 상당수는 미군 기지 인근이었다.<ref name="한겨레20140704">[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45560.html “조국 경제 발전에 기여한 소녀들의 충정은…”] 한겨레 2014.07.04</ref> 1960년대에는 기지촌 성매매 수입이 [[국민총생산]]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미군 위안부는 한국 경제에 큰 기여를 하였다.<ref name="중앙일보">[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5188487&cloc=rss%7Cnews%7Cpolitics 김광진, 주한미군기지촌여성 피해 진상규명 특별법 발의] [[중앙일보]] 2014년 7월 7일</ref><ref name="koreajoongangdaily20081030">[http://koreajoongangdaily.joins.com/news/article/article.aspx?aid=2896741 Former sex workers in fight for compensation] Korea JoongAng Daily Oct 30,2008</ref><ref name="여성신문20140812" /><ref name="당당뉴스20071201" /> 1970년대에는 [[청와대]] 관리가 정기적으로 기지촌으로 가서 미군 위안부 여성들을 모아놓고 국익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격려를 하곤 했고<ref name="경향신문20140720" /> [[1973년]] [[민관식]] [[대한민국의 교육부 장관|문교부 장관이]] 조국 경제 발전에 기여해 온 소녀들의 충정은 진실로 칭찬할만하다고 말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ref name="한겨레20140704" /> [[1971년]] 박정희 정권은 [[대한민국의 고위 공무원 목록|정부 각 부처 차관]]이 참석하는 기지촌 정화위원회를 구성하여 기지촌 활성화 정책을 폈는데, 이는 당시 안보 전략 수정으로 추진되던 주한 미군 철수를 막기 위함이었다.<ref name="여성신문2014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