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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뻗어나가던 프랑스영화계에 일시적으로 침체를 가져오게 한 것이 30년대 초의 전세계적인 [[대공황|경제공황]]이었다. 이로 인해서 파테나 고몽 같은 명문이 문을 닫는 비운을 맞보았으며 한동안의 침체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1933년경부터는 다시 활기를 되찾게 되어, 다시 전전황금기(戰前黃金期)를 맞이했다. [[자크 베케르|자크 베켈]]의 <행복의 설계>, 앙리 칼레프의 <밀회>, 장 르느와르의 <수인(獸人)>, 앙드레 위느벨의 <하루만의 천국(天國)>, 자크 페데의 <망향> 등 수없는 명작들이 쏟아져 나왔다. 프랑스문학에서 완숙했던 낭만주의의 전통이 영화 속에 한껏 되살아나는가 하면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했던 휴머니즘이 아름답게 찬미되었고, 프랑스 서민층의 독특한 낙관적이며 유머러스한 기질이 그대로 스크린 속에 살아 있었던 셈이다. 이러한 프랑스영화가 1940년대를 맞이하자 제2차 세계대전에 휩쓸리게 되며, 독일의 점령하에서 점령군의 감시와 검열 속에 다시 침체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 전쟁 이후 ===
독일의 점령하에 있던 프랑스가 종전을 맞이하면서 다시금 영화를 만들게 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전전의 프랑스영화와는 많은 변모를 가져오게 되었다. 세계의 사상적인 동요로 [[페시미즘]]이 짙게 깔려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독일군의 점령 밑에서 자유를 잃고 굴욕을 참아야 했던 프랑스에선 그전과 같은 밝은 휴머니즘이나 낭만주의적 기풍은 사라지고 있었다. 이것은 자연히 전전의 거장들의 퇴조를 의미하기도 했다. 이 중에는 마르셀 카르네의 <인생유전>이나 르네 클레망의 <[[금지된 장난]]>, 앙드레 카야트의 <라인의 가교>같은 수작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앙리 조르주 크루조의 <공포의 보수>나 <정부(情婦) 마농>같은 작품에는 짙고 회의적인 인간상실(人間喪失)의 비극이 깔려 있고, 로베르 브레송은 <시골 사제의 일기> 속에서 또다른 내일의 영화미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무렵에는 철학적으로 성장해 온 실존주의(實存主義)가 프랑스에서 꽃을 피워, 문학적으로 장 폴 사르트르와 알베르 카뮈를 필두로 해서 다방면으로 영향을 주어 왔던 점을 간과할 수가 없을 것 같다. 프랑스영화의 전후 리얼리즘이 이 무렵에 가장 두드러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전쟁이 끝난 후에 해외에 망명한 전전의 거장 르네 클레르, 장 르누아르, 마르셀 카르네 등이 다시 영화계에 복귀했었다. 장 르누아르가 <강(江)>과 <프렌치 캉캉>을 발표했고, 르네 클레르가 <밤의 기사도(騎士道)> <릴라의 문>을, 그리고 마르셀 카르네가 <애인 줄리엣>을 발표했으나, 볼 만한 것이라면 <애인 줄리엣>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