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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 이후 ===
독일의 점령하에 있던 프랑스가 종전을 맞이하면서 다시금 영화를 만들게 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전전의 프랑스영화와는 많은 변모를 가져오게 되었다. 세계의 사상적인 동요로 [[페시미즘]]이 짙게 깔려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독일군의 점령 밑에서 자유를 잃고 굴욕을 참아야 했던 프랑스에선 그전과 같은 밝은 휴머니즘이나 낭만주의적 기풍은 사라지고 있었다. 이것은 자연히 전전의 거장들의 퇴조를 의미하기도 했다. 이 중에는 마르셀 카르네의 <[[천국의 아이들 (1945년 영화)|인생유전]]>이나 [[르네 클레망의클레망]]의 <[[금지된 장난]]>, [[앙드레 카야트의카야트]]의 <라인의 가교>같은 수작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앙리 조르주 크루조의 <공포의 보수>나 <정부(情婦) 마농>같은 작품에는 짙고 회의적인 인간상실(人間喪失)의 비극이 깔려 있고, 로베르 브레송은 <시골 사제의 일기> 속에서 또다른 내일의 영화미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무렵에는 철학적으로 성장해 온 실존주의(實存主義)가 프랑스에서 꽃을 피워, 문학적으로 장 폴 사르트르와 알베르 카뮈를 필두로 해서 다방면으로 영향을 주어 왔던 점을 간과할 수가 없을 것 같다. 프랑스영화의 전후 리얼리즘이 이 무렵에 가장 두드러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전쟁이 끝난 후에 해외에 망명한 전전의 거장 르네 클레르, 장 르누아르, 마르셀 카르네 등이 다시 영화계에 복귀했었다. 장 르누아르가 <강(江)>과 <프렌치 캉캉>을 발표했고, 르네 클레르가 <밤의 기사도(騎士道)> <릴라의 문>을, 그리고 마르셀 카르네가 <애인 줄리엣>을 발표했으나, 볼 만한 것이라면 <애인 줄리엣>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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