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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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영화가 예술적인 면에서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51년 [[구로자와 아키라]](黑澤明)의 <[[라쇼몽 (1950년 영화)|라쇼몽]](羅生門)>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때부터이다. 이어 몇 개의 작품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했고, <[[할복 (영화)|할복]](割腹)>(1963) 등이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무사도 잔혹이야기]]>가 [[베를린 영화제]]에서, 그리고 <[[무호마쓰의 일생]]>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수상되어 평가를 받았다.
 
전후의 일본 영화계에서 활약한 감독으로는 <[[라쇼몽 (1950년 영화)|라쇼몬]](羅生門)> <[[7인의 사무라이]]> 등의 [[구로사와 아키라|구로자와]], <[[만춘]](晩春)>의 오쓰[[오즈 야스지로|오즈]](小津)가 있고, 60년대 이후에는 <[[원폭의 아들]]> <[[벌거벗은 섬]]>의 신토(新藤兼人), <[[인간의 조건 (영화)|인간의 조건]]> <[[괴담]](怪談)>의 고바야시(小林正樹), <[[미얀마의 수금]](竪琴)>의 이치가와(市川崑) 등 당시 40세를 넘는 중진들이 있었다. 그리고 일본의 [[누벨 바그]]라고 하는 오오시마[[오시마 나기사|오시마]](大島渚), 이마무라(今村昌平), 나카히라(中平康) 등이 활약하고 있다활약하였다. 일본영화의 원로격인 미조구치(溝口)와 오쓰(小津)는 사망했고, 구로자와 아키라도 98년 사망했다.
 
일본영화는 그 밖에도 멜로드라마, 전쟁 스펙터클, 무사영화(武士映畵), 청춘영화, 코미디 등 여러 측면의 [[오락영화]]와 특히 [[핑크영화]]가 범람하는 등 한때 연간 600편을 상회하다가 1956년엔 516편, 1970년엔 423편으로 줄었다. 5대제작회사의 붕괴가 현저해지기 시작한 현상은 대자본에 의한 영화생산이 점차 줄게 되면서 군소(群小) 독립프로덕션을 활발하게 움직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