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음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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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신농]]이라는 전설이 있다.{{Sfn|조은아|2012|p=4}} 또는 중국의 명의 [[편작]]의 무덤에서 차 나무가 자라났다는 설,{{Sfn|조은아|2012|p=7}} [[보리달마]]의 눈꺼풀로부터 차나무가 자라났다는 설 등 차의 기원에 관한 전설은 여러 가지가 있다.{{Sfn|조은아|2012|p=8}}
 
차나무의 기원은 보통 히말라야나 중국의 운남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으며 초기에는 후추 등의 향신료처럼 음식에 넣는 감미료로 많이 사용되었다. 또 약으로 이뇨와 거담에 쓰였다. 진나라 전에 문헌에 茶(차) 대신에 荼(도)가 대신 쓰였는데 씀바귀 즉 쓴차라는 의미였다. [[육우]] 에 의해 차를 마시는 방법은 집대성되고{{Sfn|조은아|2012|p=9}} 차가 다른 음식으로부터 독립해서 독자적인 문화로 자라기에 이른다.
 
삼국시대에 이르러 차로 손님을 접대하는 풍습이 점차 유행하였고, 위진시대 청담가들은 차로써 청렴을 기른다는 사상을 제창하며 차를 본격적으로 즐기기 시작되었는데, 이는 차는 술과 달리 오래 마셔도 맑을 정신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당나라 시대에는 차를 끓여 마시는 풍습(자차법, 煮茶法)이 주였다. 송나라 시대가 되면서 차를 구운 뒤 잘게 부수어 가루로 만들고 체에 걸러 여기에 끓는 물을 부어 걸쭉한 차를 마시는 점차법(点茶法)이 주를 이루게 된다. 점차법은 후에 일본으로 건너가 [[말차]]법이 된다. 송나라 시대에 전세계로 차가 수출되면서 현대의 차 산지와 당시의 차 산지가 거의 일치하는 상황이다.{{Sfn|조은아|2012|p=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