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복: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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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은 영조 34년(1758년)에 아버지 신한평과 어머니 [[홍천 피씨]]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정확한 생일은 전하지 않는다. 어렸을 적의 이름은 가권(可權)이며 뒤에 윤복으로 개명하였는데, 그의 본명이 가권(可權)으로 밝혀진 것은 그가 그린 유명한 미인도(간송미술관 소장)에서 신가권이라는 도서가 찍힌 데서 기인한 것이었다. 아래로 남동생 신윤도(윤수)와 여동생이 1명 더 태어났다.
 
신윤복은 [[신숙주]]의 방계 후손<ref>신숙주는 신윤복의 10대 방조에 해당된다. </ref>으로, 암헌공 신장(申檣)의 다섯째 귀래정 [[신말주]]의 손자손자였던 [[신공섭]]의 다섯째 아들아들인 [[신수진]]의 7세손이었다. 그러나 신수진이 서자였기에, 그의 후손들은 중인(中人)의 신분으로 낮아져 수십 명의 역관과 율관, 운관으로 활동했고, 신세담ㆍ신일흥ㆍ아버지 신한평 같은 화원들이 나왔다. 그의 가계도 20세기 이후에야 몇몇 문헌을 통해 알려졌는데, 이는 그가 서자의 후손이라서 족보에서 생략되어왔기 때문이다.
 
그의 종조부 신일흥과 종증조부 신세담은 도화서의 화원이었으며, 아버지 신한평도 도화서의 화원으로 [[영조]]의 어진을 두 번이나 그릴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정조 초기에 와서 그가 그린 그림 중 한 그림이 알아볼수 없다 하여 관료들의 탄핵을 받고 유배]하기도 했으며, 관직은 첨절제사(僉節制使)를 지냈고, 산수·인물·초상·화훼를 잘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