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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장된 광복군 숫자와 가짜 독립유공자 ===
광복군 숫자에 과장이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 이유는 기존의 광복군에 '해방 후 광복군'이 대거 포함됐기 때문이다. [[2005년]] SBS 삼일절 특집 [[뉴스추적]] 취재에 의하면, [[1945년]] 4월에 작성된 [[대한민국임시정부]] 문서에는 광복군의 인원이 339명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광복군은 560명이다. 이들 중 해방 후인 8월 19일에 입대한 사람도 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5&oid=055&aid=0000039645 엉터리 광복군 많다] [[SBS 뉴스]] 2005-03-01</ref> 광복군 군무부장을 지낸 약산 김원봉이 작성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의정원 문서> 문서를‘광복군 현세’를 보면, 1945년 3월 현재 광복군은광복군의 514명이었던수는 총사령부 108명, 1지대 89명, 2지대 185명, 3지대 119명, 기타 13명 등을 합쳐 514명인 것으로 나타난다확인된다. 이 가운데 중국인을중국인의 수는 65명으로 이를한국인광복군의 병사실제 수는인원은 449명이다. <ref>{{저널 인용
|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4&oid=036&aid=0000008597
|제목=‘ 짝퉁 광복군 ’ 수두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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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일본군 포로로 중국군 포로수용소에 잡혀있던 한인 출신 포로들이 광복 직후 임시정부에 무더기로 인계되고, 이들이 광복군으로 편입돼 임정과 같이 귀국하면서 인원이 부정확해졌다는 분석이 많다. 가짜 광복군 논란은 이들(토교대)을 비롯, 비호대와 3지대 등에서 주로 불거지고 있다.<ref>[http://www.vop.co.kr/A00000026115.html 가짜 독립운동가 판친다? 광복군 1지대원 김득명씨 “가짜 광복군 많다” 폭로] [[민중의 소리]] 2005-07-04 09</ref>
 
광복군 출신의 한 인사는 “가짜 논쟁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사람들은 광복군 3지대 출신”이라고 말했다. 총사령부가 있는 충칭에 있었던 1지대나 시안에 거점을 둔 2지대와 달리 3지대는 본부에서 멀리 떨어진 안후이성 푸양에 본부를 둬 본부의 직접 통제가 어려웠다.
독립유공자 포상 초기인 1960년대 “백지가 나돈 적이 있다”는 것은 독립유공자들 사이에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광복회 간부를 지낸 한 인사가 귀띔했다. 자주 거론되는 부대는 △광복군 3지대 △토교대 △광복군 1지대 3구대(비호대) 등이다.<ref>{{저널 인용
|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4&oid=036&aid=0000008597
|제목=‘ 짝퉁 광복군 ’ 수두룩하다
|출판사 =한겨레21
|날짜=2005.06.24}}</ref>
 
가짜 독립유공자가 많다는 지적은 1990년대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중국 국민당 정부에서 한국광복군 지원 업무를 맡았던 왕지셴 전 상교(대령)는 1994년 월간지 ‘말’과의 인터뷰에서 “일본군에 있던 한국인 91명이 ‘비호대’란 단체를 결성해 중국군 9전구(후난성 소재) 사령관을 돕고자 항일전투에 참가했다던데 사실인가”라고 묻자 “비호대란 단체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나 같은 정보장교도 9전구 사령관을 만나기 힘들었다. 한국광복군 중에서는 만난 이가 거의 없다”면서 “비호대 조직설은 거의 상상에 가까운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일부 한국인이 검증되지 않은 단체 이름을 지어내 독립유공자 행세를 해왔음을 추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