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광복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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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05.06.24}}</ref>
 
광복군 출신의 한 인사는 “가짜 논쟁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사람들은 광복군 3지대 출신”이라고 말했다. 총사령부가 있는 충칭에 있었던 1지대나 시안에 거점을 둔 2지대와 달리 3지대는 본부에서 멀리 떨어진 안후이성 푸양에 본부를 둬 본부의 직접 통제가 어려웠다. 광복회 간부 출신인 한 인사는 “서훈 초기에 광복군에 잠시라도 몸담았던 사람들이 너나 없이 3지대장이었던 김학규 장군에게 몰려가 서로 인우보증을 서가며 서훈을 받았다”며 “그런 사람들 가운데 가짜나 자격 미달자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운현 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은 김삼웅 독립기념관장과 함께 1992년 펴낸 <친일파2>에서 “(전두환) 국보위 시절 정부는 독립유공자들 가운데 가짜가 많다는 진정서를 접수해 대상자 100여명을 조사했는데, 40여명이 가짜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적었다. 독립유공자 포상 초기인 1960년대 “백지가 나돈 적이 있다”는 것은 독립유공자들 사이에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광복회 간부를 지낸 한 인사가 귀띔했다. 자주 거론되는 부대는 △광복군 3지대 △토교대 △광복군 1지대 3구대(비호대) 등이다. <ref>{{저널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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