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위프 카란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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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aup Caransa (1977).jpg|thumb|마위프 카란사.]]
'''마위리츠 "마위프" 카란사'''(Maurits "Maup" Caransa, [[1916년]] [[1월 5일]] ~ [[2009년]] [[8월 6일]])는 [[네덜란드]]의 기업인이며, [[제2차 세계 대전]] 이래로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영향력을 가진 [[부동산]] 개발업자였다. 1994년 철거된 [[마위폴레움]]과 [[렘브란트 광장]]에 세워진 [[카란사 호텔]] 등 여러 유명 빌딩을 소유했으며, 당시생을 마감할 때까지 1억 6100만 [[AFC 아약스유로]]의 회장이던재산을 [[야프 판 프라흐]]와의소유해 친분으로네덜란드의 클럽의부유한 재정을500인 지원하면서 영향력을186위에 행사하였다랭크되었다.
 
== 생애 ==
1916년 [[세파라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을 가난하게 보냈다. 이후 1941년 [[가톨릭]] 여성과 결혼했으며, 이후 자신을 유대인처럼 보이지 않도록 [[나치 독일]]의 눈을 속여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베스터브로크 임시 수용소]]에 1주간 구금된 뒤 [[강제 불임화|불임 수술]]을 받고는 풀려났다. 하지만 그의 부모와 세 형제는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사망했으며, 카란사는 [[암스테르담]] 인근의 유대인 거주 구역인 [[외덴뷔르트]]에서 전쟁이 종료될 때까지 거주하였다.
 
종전 이후 [[영국군]]과 [[미국군]]의 잉여 [[군수품]]을 판매하는 거래업자로 사업을 시작했으며, 이후 거래의 성과가 하향세로 접어들자 [[부동산]] 개발업자로 사업 영역을 바꾸어 [[백만장자]]가 되었다. 그리고 [[실러 호텔]], [[암스테르담 호텔]], [[아메리칸 호텔]] 등 여러 호텔을 소유했으며, 생을 마감할 때까지 외덴뷔르트의 많은 부동산 자산을 사들였다.
 
또한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AFC 아약스]]의 회장이던 [[야프 판 프라흐]]와의 친분으로 클럽에클럽의 재정에 대한 투자를 지속했으며지속해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이로 인해 당시 클럽은 ''카란사약스(Caransajax)''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후 1977년 그가 소유한 도박장에서 [[콘트랙트 브리지|브리지]]를 하고 나오던 도중 괴한들에게 납치되었으며, 5일 뒤 1000만 [[네덜란드 휠던|휠던]]의 몸값을 지불하고는 풀려나면서 네덜란드 최초로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난 유명 인사가 되었다. [[헤트 파롤]] 등 네덜란드의 일부 언론에서는 납치범들이 [[적군파 (독일)|적군파]] 소속이며, [[테러리스트]]인 [[크누트 폴케르츠]]의 석방을 요구했다고 전했으나, 납치범들은 끝내 체포되지 않았다.
 
그 뒤 2009년 8월 6일 [[핀케베인]]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시신은 [[아우데르케르트안더암스테르담]]에 있는 유대인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기본정렬:카란사, 마위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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