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착왜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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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착 왜구(土着 倭寇)는 12세기초 고려 김부식의 삼국사기 보다 300여년 앞선 일본나라시대 초기에 발간된 일본 최고 권위의 정사이자 동북아 권위있는 역사서 중 하나인 일본서기에 기록된 기원전 18년 온조가 한성 위례 인근에 백제를 건국하고 그 남쪽에 마한,변한을 복속하기 까지 수세기 전부터 호남지역의 원주민으로서 일본 나라의 원류가 된 임라일본의 본부가 있던 곳으로 지금의 전라남북도에 해당한다.( 일본서기 고지도에 임나 일본 본부의 위치가 전라남북도에 걸쳐 정확히 기록됨 ) 이후 이들은 백제의 집권세력층으로 성장하여 백제 무왕 및 귀족층 등이 일본에서 성장하는 등 일본과의 교류가 잦았고 일본문화와 정신이 혼연일체되어 번성하였으며 ,백제가 신라에 멸망할 때에는 백제 부흥운동을 주도하여 바다건너 온 수만명의 왜군이 전쟁에 참전하였으나 백강전투에서 신라군에 패함으로 일본과의 고리가 끊겼다.이후 일본의 춘추 시대에 중앙정부의 통제를 벗어난 왜구들이 중앙정권의 군사력이 미치지 못하는 지방 남서해 근처를 들락거리며 약탈 노략질하며 오염시키는 것을 장보고가 인근에 청해진을 설치하여 정리했다.
 
이 임라일본부와 노략토착왜구 후손들이 자기들의 본류를 오해하고 작금의 일본처럼 적반하장격으로 중국통일의 주역인 훈족흉노출신의 이주 족속인 김가 신라 가야 이주민들에게 근거없이 갖다붙인 자기자신의 명칭인것이다. 즉 토착왜구는 그들이 출몰하여 노략질한 지역에 설치한 청해진부근에 있었다. 토착왜구 원류들은 사어를 만들어 왜곡된 역사 속에 숨지말고 스스로 자신의 본류를 찾아야 한다.
 
 
< 이견>
 
광개토대왕비. 삼국사기 만이 고대한국사 정사다.
 
 
'''토착 왜구'''(土着 倭寇)는 자생적인 친일 부역자를 뜻하는 사어였다가 최근들어 다시 활성화된 표현이다.<ref>{{웹 인용|url=http://news.mt.co.kr/mtview.php?no=2019050213242732538|제목="일본보다 '일빠'가 더 싫어요" - 머니투데이 뉴스|날짜=2019-05-05|언어=ko|확인날짜=2019-05-07}}</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