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23 바이트 제거됨 ,  1년 전
한편 원술에게는 [[허사]]와 왕해(王楷)를 파견하여 급박함을 알렸다. 원술이 출병하고 여포도 기병 천여 기로 조조군을 찔러봤지만 또 패퇴당했다. 여포는 용맹한 반면 꾀가 없고 시기심이 많아 무리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으며 장수들은 뜻이 달라 서로 의심했으므로 번번이 패했다.<ref name="호로관 메뚜기">《삼국지》7권 위서 제7 여포</ref> 조조는 기수(沂水)와 사수(泗水)를 끌어들여 하비를 [[물]]에 잠기게 하고 [[공성전]]을 벌였다. 섣달<ref>《후한서》9권 본기 제9 효헌제 유협 건안 3년</ref> [[후성]], [[송헌]], [[위속]]이 이반하여 진궁과 고순을 포박하고 조조에게 투항했다. 여포는 남은 부하들과 백문루(白門樓)에 올랐다가 이내 저항을 포기하였다.
 
조조에게는 ‘여포가여포가 기병을, 조조가 [[보병]]을 지휘한다면 천하도 쉽사리 평정할 것’이라것이라 제안하고 유비에게는 ‘묶인묶인 줄이 너무 조이니 조금 느슨하게 하라고 한마디 해달라’고해달라고 부탁했다. 조조가 “범을범을 잡아매는데 꽉 조이지 않을 수 없다.”라없다고 하면서도 약간 풀어주라 명하자 유비가 “공께서는 여포가 [[정원 (후한)|정원]]과 동탁을 섬기던 일을 보지 못하셨습니까?”라고 귀띔하였다. 여포는 유비를 가리켜 “저 [[귀]] 큰 아이가놈이 가장 믿지 못할 놈이다!”<ref>大耳兒最叵信</ref> 라 외쳤다. 교살당하고 허도에 [[효수]]되었다. 중간에 여포가 “장수들을 후대했었음에도 위급해지자 죄다 나를 배반했소”라는 말도 남겼었는데 조조가 “경은 처를 저버리고 장수들의 [[여자]]를 사랑했으면서 어찌 후대했다 하시오?”라 반문하기도 했다.
 
== 성품과 평가 ==
익명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