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조조와의 결전
한편 원술에게는 [[허사]]와 왕해(王楷)를 파견하여 급박함을 알렸다. 원술이 출병하고 여포도 기병 천여 기로 조조군을 찔러봤지만 또 패퇴당했다. 여포는 용맹한 반면 꾀가 없고 시기심이 많아 무리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으며 장수들은 뜻이 달라 서로 의심했으므로 번번이 패했다.<ref name="호로관 메뚜기">《삼국지》7권 위서 제7 여포</ref> 조조는 기수(沂水)와 사수(泗水)를 끌어들여 하비를 [[물]]에 잠기게 하고 [[공성전]]을 벌였다. 섣달<ref>《후한서》9권 본기 제9 효헌제 유협 건안 3년</ref> [[후성]], [[송헌]], [[위속]]이 이반하여 진궁과 고순을 포박하고 조조에게 투항했다. 여포는 남은 부하들과 백문루(白門樓)에 올랐다가 이내 저항을 포기하였다.
조조에게는
== 성품과 평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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