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화폐)"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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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3년]] [[조선 세종]]이 [[조선통보]](朝鮮通寶)를 발행해 유통했으며, [[조선통보]] 150문은 [[은]] 1[[근 (단위)|근]](약 600g)에 고정됐지만 시장에서는 그 가치가 자주 변동됐다. 공식적으로 1문은 [[쌀]] 한 되 가치로 정해졌지만 시장에서는 [[쌀]] 한 되에 3문으로 그 가치가 떨어졌으며, [[1429년]]에는 [[쌀]] 한 되 값이 13문으로 오르기도 했다.<ref name="mun">{{뉴스 인용|url=http://news.hankyung.com/article/2015020661861|제목=세종의 화폐개혁은 왜 실패했을까|저자=김유미|날짜=2015-02-07|출판사=한국경제|언어=한국어|확인날짜=2017-09-11}}</ref> 시장에서는 [[화폐]] 사용을 꺼려 다시 [[물물교환]] 상태로 돌아갔다.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right; float:right; margin-left:18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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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ign="left" | [[File:Sangpyeongtongbo 01.jpg|200px]] || align="left" | [[File:Sangpyeongtongbo 02.jpg|20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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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ign="center" | [[상평통보]] 앞면([[선혜청]] 주조)
| align="center" | 상평통보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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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5년]] [[조선 인조]]가 다시 [[조선통보]]를 발행했으나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으로 쓰이지 않게 됐다. 동전을 만드는데 필요한 [[구리]]를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던 점 또한 [[화폐]] 사용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다.<ref name="copper">{{뉴스 인용|url=http://www.koreaherald.com/view.php?ud=20150828000981|제목=[Weekender] Korean currency evolves over millennium|저자=정주원|날짜=2015-08-28|출판사=The Korea Herald|언어=영어|확인날짜=2017-09-11}}</ref> [[조선통보]] 이외에 [[십전통보]](十錢通寶)도 발행됐으나 널리 쓰이지는 않았다.<ref>[http://museum.bok.or.kr/eng/display/1F/D03.jsp museum.bok.or.kr]{{깨진 링크|url=http://museum.bok.or.kr/eng/display/1F/D03.jsp }}</ref>
 
 
[[1883년]] [[조선 고종]]은 통화정책을 정비하고 국제적인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 조폐기관인 [[전환국]]을 설치했고, 문(文)과 [[상평통보]]는 [[1892년]]에 [[은화]]인 [[조선 양|양(兩)]]으로 대체됐다.
 
[[File:Brockhaus and Efron Encyclopedic Dictionary b22 833-2.jpg|390px|left|조선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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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ign="center" | [[상평통보]] 앞면([[선혜청]] 주조)
| align="center" | 상평통보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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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중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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