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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관계는 [[1990년]] [[10월 3일]] [[독일 통일로통일]]로 동독과의[[동독]]과의 외교관계가[[외교관계]]가 끊겼으나 [[2001년]] [[3월 1일]]에 다시 수교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관계는 [[1990년]] [[10월 3일]] 독일 통일로 동독과의 외교관계가 끊겼으나 [[2001년]] [[3월 1일]]에 다시 수교하였다.
 
; 일본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일본]]의 적대국이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서세계대전]]에서 함께 추축국으로서 연합국과 맞서 싸웠다. 대전 후, 양국은 잿더미에서 기적적인 부흥을 이뤄낸 경제대국이고, 중요한 파트너로서 일본에[[일본]]에 있어 독일은 [[영국]], [[프랑스]]를 앞지르고 유럽 최대의 무역 상대국이 되었다. 또한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독일은 일본과[[일본]]과 함께 [[상임이사국]]을 노리는 [[G4 국가]]의 파트너로서 행동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과[[일본]]과 독일은 정치적 성향이 일치하고 있다.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일본]]의 적대국이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함께 추축국으로서 연합국과 맞서 싸웠다. 대전 후, 양국은 잿더미에서 기적적인 부흥을 이뤄낸 경제대국이고, 중요한 파트너로서 일본에 있어 독일은 [[영국]], [[프랑스]]를 앞지르고 유럽 최대의 무역 상대국이 되었다. 또한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독일은 일본과 함께 [[상임이사국]]을 노리는 [[G4 국가]]의 파트너로서 행동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과 독일은 정치적 성향이 일치하고 있다.
 
; [[러시아의 대외 관계|러시아]]
[[제2차 세계 대전]]을 앞두고 [[나치 독일]]과 [[소련]]은 [[독일-소련 불가침 조약]]([[1939년]] [[8월 23일]])을 맺었다. 이 조약에서 양국은 [[폴란드]] 등을 분할, 점령하기로 합의하였다.<ref>상세한 것은 [[독일-소련 불가침 조약]]을 참조.</ref> 그러나 [[1941년]] [[6월]] 독일은 [[독일-소련 불가침 조약|불가침 조약]]을 깨고 소련과[[소련]]과 중앙유럽을[[중앙유럽]]을 침공하였다. 이 때부터 [[1944년]]까지 소련이[[소련]]이 점령하던 지역은 독일의 [[오스틀란트]](Ostland)의 일부가 되었다.([[몰다비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제외) 그 후 소련은[[소련]]은 [[동부 전선 (제2차 세계 대전)|동부 전선]]에서 일련의 전투를[[전투]]를 치르며 독일을 서쪽으로[[서쪽]]으로 밀어냈다.<ref>상세한 것은 [[동부 전선 (제2차 세계 대전)|동부 전선]]을 참조.</ref>
 
[[제2차 세계 대전]]을 앞두고 [[나치 독일]]과 [[소련]]은 [[독일-소련 불가침 조약]](1939년 8월 23일)을 맺었다. 이 조약에서 양국은 [[폴란드]] 등을 분할, 점령하기로 합의하였다.<ref>상세한 것은 [[독일-소련 불가침 조약]]을 참조.</ref> 그러나 [[1941년]] 6월 독일은 [[독일-소련 불가침 조약|불가침 조약]]을 깨고 소련과 중앙유럽을 침공하였다. 이 때부터 [[1944년]]까지 소련이 점령하던 지역은 독일의 [[오스틀란트]](Ostland)의 일부가 되었다.([[몰다비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제외) 그 후 소련은 [[동부 전선 (제2차 세계 대전)|동부 전선]]에서 일련의 전투를 치르며 독일을 서쪽으로 밀어냈다.<ref>상세한 것은 [[동부 전선 (제2차 세계 대전)|동부 전선]]을 참조.</ref>
 
; 폴란드
[[제2차 세계대전으로세계대전]]으로 인하여 독일과 폴란드의[[폴란드]]의 관계는 더 이상 악화될 수 없을 때까지 악화되었다. 하지만 나치가[[나치]]가 패망한 이후 서서히 외교관계를[[외교관계]]를 회복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독일과 폴란드의 관계는 더 이상 악화될 수 없을 때까지 악화되었다. 하지만 나치가 패망한 이후 서서히 외교관계를 회복하고 있다.
 
; 루마니아
루마니아는[[루마니아]]는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연합국]]에 가담하여 한때한 때 전 국토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독일 제국]]군에 점령당하여 [[동맹국]]에 항복을 한 바가 있었다([[부쿠레슈티 조약 (1918년)|부쿠레슈티 강화 조약]]).
 
루마니아는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연합국]]에 가담하여 한때 전 국토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독일 제국]]군에 점령당하여 [[동맹국]]에 항복을 한 바가 있었다([[부쿠레슈티 조약 (1918년)|부쿠레슈티 강화 조약]]).
 
; 프랑스
[[프랑스 혁명]]([[1789년]])으로 [[알자스]] 지방에 독일군주들이 갖고 있던 소유권이 영향을 받게 되자 프랑스와[[프랑스]]와 독일군주들간의 긴장관계가 야기되었다.<ref>{{서적 인용 |저자 = 김용구 |제목 = 세계외교사 |연도 = 1989 |판=1995(上•下 合本) |출판사 = 서울대학교 출판부 | id={{ISBN|89-7096-413-4}}|쪽= 2 |인용문 =프랑스혁명은 결국 프랑스의 순수한 국내문제로 남아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알사스지방에 독일군주들이 갖고 있던 소유권이 혁명으로 영향을 받게 되자 독일군주들과의 긴장관계가 야기되었다.}}</ref>
 
[[프랑스 혁명]](1789년)으로 [[알자스]] 지방에 독일군주들이 갖고 있던 소유권이 영향을 받게 되자 프랑스와 독일군주들간의 긴장관계가 야기되었다.<ref>{{서적 인용 |저자 = 김용구 |제목 = 세계외교사 |연도 = 1989 |판=1995(上•下 合本) |출판사 = 서울대학교 출판부 | id={{ISBN|89-7096-413-4}}|쪽= 2 |인용문 =프랑스혁명은 결국 프랑스의 순수한 국내문제로 남아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알사스지방에 독일군주들이 갖고 있던 소유권이 혁명으로 영향을 받게 되자 독일군주들과의 긴장관계가 야기되었다.}}</ref>
 
; 헝가리
[[955년]] [[아우크스부르크]] 부근에서 일어난 레흐펠트 전투(Battle of Lechfeld)에서 [[오토 1세 (신성 로마 제국)|오토 1세]](재위 : [[936년 - ]]~[[973년]])의 군대에[[군대]]에 패해 지휘관들이 처형당했다[[처형]]당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헝가리는 최소한 [[서부 유럽에유럽]]에 있어서는 일시적으로 약탈을 중단하고, 보다 평화적인 방향으로 노선을 바꾸게 된다. [[오토 3세]](재위 : [[991년 - ]]~[[1002년]])는 헝가리의[[헝가리]]의 그란(현재의 [[에스테르곰]])에 주교 통치 지역을 건설하여 [[이슈트반 1세]]를 헝가리의[[헝가리]]의 왕으로 추대([[1000년]])<ref name="박래식">박래식 저, 《이야기 독일사:게르만 민족에서 독일의 통일까지》 청아출판사(2006) {{ISBN|89-368-0354-9}}</ref>{{참고 쪽|53}}하고, [[헝가리 왕국]]을 건국하게 하였다. 이렇게 해서 헝가리는 중앙유럽에 위치한 가톨릭 국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세기 초, [[미클로시 호르티]]의 헝가리는 영토를 상실함에 따른 반작용으로 차츰 우경화되었다. 호르티는 수정주의 정책을 실시하고 이탈리아 파시스트와 독일 나치의 접근을 용이하게 한다.<ref name="조르주">조르주 뒤비 지음, 채인택 옮김, 《지도로 보는 세계사》, 생각의 나무 (2006)</ref>{{참고 쪽|200}} 이리하여 헝가리는 [[1930년대]]에 [[나치 독일]]의 강요로 동맹 관계를 맺었다. [[아돌프 히틀러|히틀러]]는 헝가리에 있는 [[유대인]]들을 학살하기 위해 헝가리를 침공하여 호르티를 [[민족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 합작자로 대체해야 했다.
 
955년 [[아우크스부르크]] 부근에서 일어난 레흐펠트 전투(Battle of Lechfeld)에서 [[오토 1세 (신성 로마 제국)|오토 1세]](재위: 936년 - 973년)의 군대에 패해 지휘관들이 처형당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헝가리는 최소한 서부 유럽에 있어서는 일시적으로 약탈을 중단하고, 보다 평화적인 방향으로 노선을 바꾸게 된다. [[오토 3세]](재위: 991년 - 1002년)는 헝가리의 그란(현재의 [[에스테르곰]])에 주교 통치 지역을 건설하여 [[이슈트반 1세]]를 헝가리의 왕으로 추대(1000년)<ref name="박래식">박래식 저, 《이야기 독일사:게르만 민족에서 독일의 통일까지》 청아출판사(2006) {{ISBN|89-368-0354-9}}</ref>{{참고 쪽|53}}하고, [[헝가리 왕국]]을 건국하게 하였다. 이렇게 해서 헝가리는 중앙유럽에 위치한 가톨릭 국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세기 초, [[미클로시 호르티]]의 헝가리는 영토를 상실함에 따른 반작용으로 차츰 우경화되었다. 호르티는 수정주의 정책을 실시하고 이탈리아 파시스트와 독일 나치의 접근을 용이하게 한다.<ref name="조르주">조르주 뒤비 지음, 채인택 옮김, 《지도로 보는 세계사》, 생각의 나무 (2006)</ref>{{참고 쪽|200}} 이리하여 헝가리는 [[1930년대]]에 [[나치 독일]]의 강요로 동맹 관계를 맺었다. [[아돌프 히틀러|히틀러]]는 헝가리에 있는 [[유대인]]들을 학살하기 위해 헝가리를 침공하여 호르티를 [[민족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 합작자로 대체해야 했다.
 
; 아르헨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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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마르 공화국]]
* [[독일 민주 공화국]]
* [[독일인들 (다큐멘터리)]]([[:en:Die Deutschen]])
* [[독일의 과학기술]]([[:en:Science and technology in Germany]])
 
== 출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