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119.192.132.42(토론)의 24437617판 편집을 되돌림
124번째 줄:
{{참고|난설헌집|성소부부고|홍길동전}}
 
[[1608년]](선조 41년) 사신으로 [[명나라|명]]에 다녀왔다. 이때 누나인 [[허난설헌|난설헌]](蘭雪軒)의 시를 [[명나라|명]]의 문인, 작가들에게 보여주었는데 [[명나라|명]]의 문인들은 난설헌의 작품성에 찬탄(讚嘆)하여 특별히 출간하고 인쇄하는 비용을 대주기도 하였다. 그해 [[광해군]]이 재위에 오르자 [[대북]]이 집권하면서 경연관(經筵官)이 되어 경연장에 들었다. 이듬해 [[1609년]](광해군 1년) 행사직으로 익사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그해 [[형조]] [[참의]](參議)가 되고 [[명나라|명]]에서 국왕 책봉사(冊封使)가 왔을 때 이상의(李尙毅)의 종사관이 되었다. 이해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가 되고 이어 형조참의가 되었다. 그해 [[명나라|명]]에 사절단의 수행원으로 [[베이징]]에 가서 [[천주교]]의 기도문을 얻어 왔다.
 
[[파일:Honggildongjeon.jpg|섬네일|왼쪽|180px|[[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홍길동전 첫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