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일본 국경 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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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만주국]] 설립 이후, 일본군과 소련군은 1934년까지 만주의 국경에서 약 151회 충돌했다. 이 전투는 1935년부터 1936년까지 1년간 약 150회 정도로 증가했고, 그 규모도 훨씬 커지게 되었다. 1935년 1월, 첫 무장 충돌인 할하미아오 사건이 [[몽골 인민 공화국]]과 만주국 사이에서 발생했다.<ref>Charles Otterstedt, [http://www.hsdl.org/?view&did=445559 ''Kwantung Army and the Nomonhan Incident: Its Impact on National security'']</ref> 몽골 인민군의 기병대는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만주국 군대는 손실을 입었으며 일본군 고문관도 사망했다. 1935년 12월부터 1936년 3월까지 오라호도가 사건 및 타우란 사건이 발생했다. 이 전투들에서 일본군과 몽골 인민군 모두 약간의 장갑차를 썼다. 1937년 6월에는 칸차주 섬 사건이 [[아무르 강]]에서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소련군 고속정 1대가 격침되었고, 나머지 1대도 파손되었다. 일본제국 1사단은 이후 소련군이 철수하자 이 섬을 점령했다. 1938년도에는 조선과 일본 제국, 소비에트 연방의 국경 지역인 [[하산]]의 호수에서 [[하산 호 전투]]가 발발했다. 하산은 [[블라디보스토크]]와 [[나진]]을 잇는 요충지로 양측 모두에게 포기할 수 없는 지역이었다. 이 전투에서 소련군은 대승을 거두었고, 일본은 [[미국]]에게 중재를 요청했다. 이후 소련과 일본 사이에서는 일시적인 평화가 찾아왔다. 그러나 1939년 5월 11일, 여전히 불씨로 남아 있던 할힌골 지방에서 충돌이 발생했다. 이 때 소련 사단들은 일본 제국 사단들과 충돌했다. 이 때 소련 극동군은 일본제국 23보병사단과 전투를 벌였다. 소련군은 5월부터 7월까지인 1차 접전에서 일본군의 공격을 막아내었지만 피해가 막심했다. 2차 접전 때 소련군은 [[게오르기 주코프]] 장군의 주도 하에 8월 달부터 대공세를 시작했다. 소련군은 만주국 일대로 대대적인 침공을 개시해 만주국 내에 영토를 얻을 정도로 빠르게 일본군을 격파했다. 1940년 9월 16일, 일본군은 결국 할힌골에서 후퇴했다.
 
===하산 호 전투===
{{본문|하산 호 전트전투}}
{{전쟁 정보
|분쟁=하산 호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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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투에서 [[소련군]]의 압도적인 화력앞에 일본군은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소련군]]은 승리하였다. 그러나 [[소련군]]의 피해도 커서, 이 지휘의 총책임자였던 [[바실리 블류헤르]] 원수는 [[이오시프 스탈린|스탈린]]의 신임을 잃고 숙청, 처형되었다.
 
==할힌골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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