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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1946년]] 9월 10일 박수형이 창간했다. 창간 당시 타블로이드 2면으로2면(창간호는 4면)으로 발행했다.
 
[[1949년]] 9월5월 16일신문 판형을 국제규격인 B3판으로 교체했다. 7월 [[김지태]](金智泰)가 회사를 인수하여 제2대 사장으로 취임하였고, 그해 10월 대중신문(大眾新聞)을 흡수인수했다.흡수, 통합하면서 제호를 한글에서 한자로 바꾸었다.
 
[[1951년]] 사옥 시설이 [[미군]] 산하 신문인 《[[스타스 앤 스트라이프스 (신문)|스타스 앤 스트라이프스]]》에 의해 강제 징발되었다가 2년 후 해제되었다.
[[1953년]] 11월 27일에 [[부산역전 대화재]]로 사옥이 불에 탔다.
 
[[1958년]] 지역 최초로 조·석간 6면 발행을 시작했으며 이듬해 9월 역시 지역 최초로 서울지사를 설치했다. 11월 부일장학회(釜日奬學會)를 설립했다.
 
[[1959년]] 1952년 4대 사장에 취임한 김지태는 자신이 개국한 [[부산문화방송]]을 겸영했다.
|출판사 =뉴시스
|날짜=2014.02.28}}</ref>
 
[[1963년]] 2월 본사를 새로 준공된 중앙동 사옥으로 이전했다.
 
[[1978년]] 6월 11일 자매지 '주간부산'을 창간했다.
 
[[1980년]] 11월 신군부의 [[언론통폐합]]으로 폐간당한 [[국제신문]]을 인수해 9년간 독점체제를 유지했다.
 
[[1983년]] 11월 6일 주간 일요건강(1986년 11월 9일 주간부산으로 개칭. 1989년 9월 10일 휴간)을 창간했다.
 
[[1984년]] 12월 31일에는 본사를 수정동으로 옮겨 ‘수정동 시대’를 개막했다.
 
[[1985년]] 3월 1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상설 신문전시관을 개관했다.
[[1988년]] 7월 11일부터 노조 파업으로 엿새 동안 신문 발행이 중단됐다. 16일 협상이 타결되어 노조와 재단은 윤임술 사장의 퇴진, 편집국장 추천제 등에 합의했으나 정수재단 문제는 제외됐다.
 
[[1988년]] 7월 11일부터11일 한국 언론 사상 초유의 파업을 단행, 편집권 독립을 일궈냈다. 6일간의 이 파업은 언론자유의 깃발을 올린 신호탄으로 한국 언론사에 평가된다. <ref group="주">노조 파업으로 엿새 동안 신문 발행이 중단됐다. 16일 협상이 타결되어 노조와 재단은 윤임술 사장의 퇴진, 편집국장 추천제 등에 합의했으나 정수재단 문제는 제외됐다. </ref>
 
[[1989년]] [[2월]]에 [[국제신문]]이 복간하면서 비슷한 시기에 생긴 항도일보(부산매일신문으로 개칭)와 함께 부산지역에 3개 일간지가 유지되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당시 부산매일이 폐간됨에 따라 현재까지 2개 일간지가 경쟁 구도를 형성하였다.
 
[[1994년]] 12월 제2사옥인 금정사옥을 신축했다.
 
[[1998년]] 5월 6일부터 전면 가로쓰기를 실시하고 9월 4일에 광고대행사인 '부일IS'를 세웠다.
[[2004년]] 4월부터 제호를 한글로 바꾸고 서체와 로고를 바꾸었다.
 
[[2008년]] 3월 자회사 ㈜BInet(비아이넷)를 설립했다. 12월 부일E&E를 세웠다.
 
[[2009년]] [[2월 11일]] 지령 20000호를 돌파했다.<ref>{{뉴스 인용
* [[(주)BS투데이]]
* [[비솜]]
* [[부일여성대학]]
 
== 각주 ==
익명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