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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삼한의 유력한 세력으로 등장했던 목지부족(目支部族)은 기원후 3세기 전반에 이르러 소멸된 것 같다. 목지국은 마한 54개 소국 연맹체의 맹주로 그 위치는 충청남도 직산·성환·아산만 일대 또는 공주, 전라북도 익산 등지에 비정되고 있으나 확실한 위치는 알 수 없다.《삼국지》에는 진·변한 24국 중 12국이 목지국진왕에게 종속되어 있었다는 기록이 있어, 진왕이 진·변한의 일부 지역에 대하여 영향력을 행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리하여 북방 [[부여]]와[[고구려]]에서 망명해 온 [[백제]](伯濟)국의 [[예맥족]]이 그 지배권을 대신하였다. 건국 당시 [[온조]]가 영도한 백제는 마한 세력을 결합하여 백제왕국(百濟王國)의 기초를 다졌다. 한편으로 진한의 여러 부족 중에는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중심으로 한 사로(斯盧, [[신라]])가 경주평야의 6촌(六村)의 씨족 세력을 기반으로 하여 금속문화를 수용해서 점차 세력을 키워갔다.
 
삼한은 사회 발전이 늦어 씨족사회적인 요소가 오래 계속되었다. [[기원전 2부터3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에2세기]]에 이르기까지 삼한 사회에서 부족 간의 권력에 크게 차이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 세력의 대소에 따라 [[신지]](臣智)·[[읍차]](邑借) 등으로 불리는 족장이 있었으나 그들은 아직도 지역적으로 조직화된 권력을 형성하지 못하여 서로 제어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제정(祭政)은 일찍부터 분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제사권은 족장 외에 [[천군]](天君)이란 것이 따로 있어, 각기 [[소도]](蘇塗)라고 일컬어지는 특별 구역에서 매년 한두 차례 제사(祭祀)가 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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