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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1963년]] ~ )은 [[대한민국]]의 기업인이다.
 
 
== 개요 ==
{{인용문2|이단에서 출발하여 정통에 올라서고, 정통에 올라선 후 다시 이단을 추구한다}}
 
아프로서비스그룹 최윤 회장의 확고한 경영철학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말이다.
 
최윤 회장에게 있어 ‘이단(異端, 기존 권위나 세속적인 상식과는 다름)’이라는 단어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성공을 이끌어 내기 위한 기업가로서의 평소 신념이자 삶을 지속하는 원동력이었다.
 
‘일본에서 자란 한국인’, ‘재일교포 3세’라는 꼬리표를 달고 40년 가까운 세월을 타국 일본에서 성장해온 최윤 회장.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이방인이었던 최윤 회장은 한동안 한국인임을 증명하기 위해 한국국적 여권을 주위에 보여주고 다녔을 정도로 한국愛에 빠져 있다.
 
더 이상 자신이 겪은 사회적 편견과 차별 받지 않는 진정한 한국인으로 키우기 위해 자녀를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출산하며, 두 자녀의 아빠가 된 최윤 회장은 자녀 이름도 사내 공모를 통해 이름(최선, 최다해) 지을 만큼 지금도 조국(祖國) 사랑을 생활 속에서 몸소 실천하고 있다.
 
한국에서 단란한 가정을 꾸린 지금. 이를 두고 최윤 회장은 “100년만의 조국 귀국”이라는 표현을 아끼지 않고 있다.
 
== 비인기 스포츠 후원 ==
'''“비인기 스포츠 후원으로 지역사회에 희망을 전하다”'''
 
‘최윤 회장과 스포츠’를 이야기할 때 그의 재일동포로서의 어려웠던 삶을 떼어놓을 수 없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 무렵 할아버지때 일본으로 건너가 나고야에서 태어난 최윤 회장은 어린시절부터 일본인들의 갖가지 차별과 불이익을 견뎌내며 살아왔다.
 
더욱 안타까운 현실은 조국 대한민국 국민들마저 재일동포를 이방인인양 대하면서 일본인의 아류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일련의 가슴 아픈 경험들로 인해 당시 최윤 회장이 내색하지 못했던 솔직한 심정은 환경적으로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는 최윤 회장의 이러한 생각의 전환을 가져다 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후, 1996년 무등산(광주) 폭격기에서 나고야의 태양이 된 선동렬 야구선수와 1998년 박세리 골프선수의 US여자오픈 우승, 그리고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진출까지 대한민국 스포츠인들의 빛나는 투혼은 전세계 많은 재외동포들에게 감동을 주며, 한국인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재외동포로서 느낀 감동에 조금이나마 은혜를 갚아 나가고자, 스포츠 후원에 열성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최윤 회장의 남다른 스포츠 사랑은 스포츠 계에 정평이 나있다.
 
그 중 하나가 럭비와 하키팀 후원이다.
 
학창시절 일본에서 럭비선수로 활약하기도 한 최윤 회장의 이 같은 경험으로 비인기 종목이 겪는 어려움과 설움을 잘 알기에 오랜 시간 묵묵히 비인기 종목에 대한 후원을 이어올 수 있었다.
 
일본과 달리, 한국 럭비가 비인기종목의 설움을 겪고 있는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럭비계 저변 확대에 기여하고자 2015년 대한럭비협회 부회장직을 맡아 남자 국가대표 럭비팀을 후원하고 있으며, 같은 이유로 남녀 필드 하키 국가대표팀을 후원 중이다.
 
최윤 회장의 야구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1996년 일본 나고야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활약한 선동열 야구대표팀 감독과는 친분이 두텁다. 그 인연으로 당시 후원을 받지 못해 운영에 어려움을 겪던 전국농아인야구에 관심을 갖게 됐다.
 
물품지원으로 시작된 야구팀 후원은 리그 자체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국대회 개최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등 물심양면 후원을 확대하고 있다. 이렇게 시작된 ‘전국농아인 야구대회’는 올해로 10년째를 맞이한다.
 
이 밖에도 유도와 골프 후원이 있다.
 
같은 재일동포 3세로 어릴때부터 경계인으로 차별을 겪으면서도 3대째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안창림 한국 국가대표 유도선수를 후원하면서 안 선수의 힘을 북돋고 있다. 2018년 세계선수권 대회 금메달을 획득한 안창림 선수는 2020년 도쿄올림픽 금메달을 정조준하고 있다.
 
또 여자골퍼 박세리 선수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OK저축은행 박세리 인비테이셔널’을 매년 개최해 오고 있다.
 
‘OK저축은행 박세리 인비테이셔널’은 1998년 박세리 선수가 미국 LPGA투어 메이저대회에서 우승을 하면서 당시 재외동포에게 큰 힘이 됐지만 이를 기념하는 대회가 없는 것을 안타까워한 최윤 회장이 직접 박세리 선수를 찾아가 이름을 딴 대회를 만들고 싶다고 전하면서 대회 주최가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을 하는 기업가 입장에서 일반적으로 광고효과가 높지 않은 비인기 종목에 대한 후원을 결정하기란 쉽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오랜시간 묵묵히 후원하고 있는 최윤 회장의 이 같은 행보가 단연 주목받는 이유다.
 
최윤 회장은 이 같은 비인기종목에 대한 후원뿐만 아니라, 프로스포츠단도 운영하며 국내 스포츠산업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 배구단’이 그것이다.
 
지난 2012년 최윤 회장은 계열사 러시앤캐시를 통해 모기업의 갑작스런 배구단 운영포기로 인해 존폐위기에 놓였던 드림식스 남자프로배구단에 대한 네이밍 스폰서 참여를 결정했다.
 
당시 KOVO(한국배구연맹)가 제안한 모든 기업들이 인수에 고개를 돌리던 상황 속에서 최윤 회장의 스폰서 참여 역시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좋지 않은 경제상황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러시앤캐시를 바라보는 ‘대부업’이라는 사회적 편견 때문이었다.
 
1년 넘게 모기업을 찾지 못해 연맹의 관리를 받던 드림식스에 대한 최윤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시즌 돌풍을 일으키면서 러시앤캐시의 브랜드 이미지 제고와 인지도 상승은 물론, 임직원들의 열성적인 응원으로 하나된 모습은 덤으로 얻은 결실이었다.
 
이후 인수과정에서 좌절을 겪었지만, 최윤 회장은 2013년 6개 구단체제로 운영되는 남자배구 리그운영의 파행 국면을 막고, 한국 배구의 발전을 위해 대승적인 차원에서 ‘러시앤캐시 베스피드’(현,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 배구단)을 창설하며 한국 배구계의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배구단 구단주인 최윤 회장은 당시 지도자 경험이 전혀 없던 월드스타 김세진 KBSN해설위원을 초대감독에 영입하는 그야말로 파격적인 결정을 내리면서, 배구코트에 새바람을 불러 일으켜달라는 요구와 함께 감독에게 전권을 위임한 것은 배구계에서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최윤 회장은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실의에 빠진 안산의 유일한 프로구단으로서 과감한 투자를 직접 지시하고 실행에 옮겼다.
 
특히, 움직이는 광고판이라 불리는 프로선수 유니폼에 아무런 광고표기 없이, 안산시민이 겪은 아픔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라는 의지를 담아 글자 그대로 “우리는 안산이다”라는 뜻과 발음상 ‘위안’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We Ansan!’이라는 글귀만 새겨 넣는 등 최윤 회장의 이러한 진정성 있는 후원과 과감한 투자가 있었기에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 배구단’이 창단 3년 만에 2년 연속 우승이라는 쾌거를 일궈낼 수 있었다.
 
최윤 회장은 2018년 10월에도 해체위기에 놓인 프로 스포츠단을 살리기 위해 또다시 도움의 손을 내밀었다.
 
모기업이 농구단 운영에서 손을 뗀 이후 인수할 기업을 찾지 못해 해체위기에 놓였던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위탁운영팀(현, OK저축은행 읏샷 여자 프로농구단)의 네이밍 스폰서를 1년간 맡기로 하면서 여자농구 붐 조성에 디딤돌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그가, 다소 늦은 나이에 한국에서의 삶을 일구기 시작해 진정한 기업가로서 OK저축은행, OK캐피탈, OK뱅크인도네시아 등의 계열사를 둔 건실한 금융그룹으로 아프로서비스그룹의 지속 성장을 이끌고 있다.
 
== 생애 ==
[[1963년]]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났다. 1920년경 일본으로 건너간 할아버지 세대에게서 태어난 재일동포 4세이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한국식 불고기를 파는 식당 '신라관'을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 전역에 프랜차이즈를 포함해 수십여 개의 매장을 열었다. '신라관'은 동시에 300명 수용이 가능했다. '신라관'이라는 이름은 본적(경남 고성군 하일면 학림리)이 신라 땅이었던 데에 착안해 붙였다고 한다. [[2000년]] 한국에 벤처캐피털사를 세우고 투자를 했다가 2001년 닷컴(IT)버블이 터지면서 큰 손해를 봤다. 이후 '소비자금융업'에 관심을 두고 한국에서 활동하던 일본계 소비자금융업체 아에루(AEL)의 부도로 매물로 나온 당시 소비자금융업체 1위사인 A&O를 재일교포 상공인들을 설득해 A&O의 계열사였던 A&O대부와 프로그레스 대부 등 7곳을 차례로 사들였다. 소비자금융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러시앤캐시'라는 브랜드로 TV광고를 시작했고, 브랜드 런칭 1년여 만에 흑자로 전환했다. 2000년 당시 협회운영을 사조직화하며 파행을 겪고 있던 한국소비자금융연합회와 한국대부사업자연합회를 통합, 새로운 협의체인 '사단법인 한국대부소비자금융협회(Korea Consumer Finance Association, KCFA)'를 결성했다. 이 단체는 금융위원회로부터 대부업체 자율감독기관으로 공식인가를 받아 설립된 '한국대부금융협회'의 모태가 됐다. 2010년 부산저축은행을 시작으로 제2금융권인 저축은행 인수작업에 돌입했다. 7전 8기의 도전 끝에 결국 2014년 7월 예나래저축은행과 예주저축은행을 인수했다. 직접 대표를 맡아 저축은행의 사명을 OK저축은행으로 변경했다. 2015년 한국시티은행의 자회사인 씨티캐피탈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노조의 반대에 부딪혀 실패했다. 금융당국의 설득으로 노조가 반대를 철회하면서 삼수 끝에 2016년 OK캐피탈을 품으며 사세를 넓혔다. 2010년 중국 천진을 시작으로 2013년 심천, 2014년 중경 현지법인을 설립하는 등 해외시장 개척에 속도를 냈다. 2012년 현지법인을 세웠고, 직원의 95% 이상을 중국인으로 채용하는 등 최적화된 현지화 전략을 추진한 결과 개업 2년여 만에 흑자달성에 성공했다. 2016년 인도네시아의 시중은행인 안다라 뱅크를 인수해 'OK뱅크 인도네시아’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는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에 이은 4번째 인수사례로 알려져 있다. 같은 해 12월에는 2016년 12월 인도네시아 증시에 상장된 중소기업 전문은행 디나르뱅크와 주식거래계약을 체결했으며, 2018년 10월 인도네시아 금융감독원(OJK)으로부터 최종 인수를 승인 받았다. 최윤 회장은 앞으로 디나르뱅크와 OK뱅크 인도네시아를 합병해, 현지 중대형은행으로 키워나갈 방침이다. 2002년 설립된 OK배정장학재단의 이사장이기도 한 최윤 회장은 해마다 중∙고등학생, 대학(원)생을 선발해 장학금을 지원해 오고 있다. 지금까지 국내외 장학생 약 5천여명에게 누적금액으로만 약 140억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2015년부터 금강학교, 동경한국학교, 건국학교, 교토국제학교 등 일본내 민족학교 6곳에 총6억여원의 장학금을 지원해 오고 있다.
'''“신라관 음식점을 열다”'''
 
최윤 회장은 1963년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났다.
 
1920년경 일본으로 건너간 할아버지 세대부터 지금까지 일본사회의 차별을 감내하며 4대째 한국인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갖기 위해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일본사회에서 재일동포의 후손들은 좋은 학교를 나와도 공무원은 물론, 그럴싸한 기업에 취직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던 시절. 자연스럽게 최윤 회장은 어려서부터 사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한국식 불고기를 파는 식당 ‘신라관’을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 전역에 프랜차이즈를 포함해 수십여 개의 매장을 열 정도로 이 사업은 번창했다. ‘신라관’은 동시에 300명 수용이 가능했으며 당시 일본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큰 규모였다.
 
‘신라관’의 이름은 그의 본적(경남 고성군 하일면 학림리)이 옛 신라 땅이었던 데에 착안해 붙였다.
 
'''“한국에서 사업의 첫 발을 내딛다”'''
 
요식업으로 성공을 일군 최윤 회장은 ‘일본 땅에 사는 한국인’, ‘재일교포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차별과 멸시를 받았던 일본을 떠나, 고국(故國) 한국에서 오랫동안 꿈꿔왔던 사업을 펼치고자 큰 발걸음을 내딛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학연도, 지연도 전혀 없던 그의 첫 도전은 결코 쉽지 않았다.
 
소비자금융업(대부업)으로 이름을 알리기 전인, 지난 2000년 한국에 벤처캐피털사를 세우고 투자를 했다가 2001년 누구도 예상치 못한 닷컴(IT)버블이 터지면서 큰 손해를 봤다.
 
최윤 회장은 이러한 실패에 낙담할 법도 했지만 오히려 더욱 단단해지는 계기로 삼았다. 재일동포 1세∙2세 선배 경영인들의 숱한 실패를 곁에서 보아왔던 최윤 회장이기에 “나는 그냥 돌아갈 수 없다”라는 특유의 오기가 발동한 것이다.
 
‘1등이 될 수 있는 사업아이템’, ‘일본에서 안착했는데 한국에는 없는 시장’, 바로 ‘소비자금융업’이라는 기존에 없던 사업기회를 창출하며 다시 새로운 도전을 위해 소매를 걷어 붙였다.
 
일본에서 식음료 사업경험만 있던 최윤 회장 역시 금융업은 한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도전을 향한 첫걸음이었다. 소비자금융업을 직접 경험해보진 않았지만 최윤 회장은 이를 크게 서비스업으로 정의를 내리며 사업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됐다.
 
시장상황을 간파한 최윤 회장은 때마침 한국에서 활동하던 일본계 소비자금융업체 아에루(AEL)의 부도로 매물로 나온 당시 소비자금융업체 1위사인 A&O를 재일교포 상공인들을 설득해 A&O의 계열사였던 A&O대부와 프로그레스 대부 등 7곳을 차례로 사들였다.
 
최윤 회장은 소비자금융업의 특성상 우수고객을 정확히 선별하고, 신속한 대출여부가 사업의 승산을 판가름할 것이라 생각했다.
 
'''“선진 소비자금융업 구축을 위해 앞장서다”'''
 
소비자금융업법이 제정된 이후에도 대부업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인식은 여전했다.
 
하지만 제도권 금융회사로부터 소외된 서민들을 위한 소비자금융에 대한 필요성은 점차 높아지고 있었고, 더 이상 서민들이 음성화된 불법사채의 피해를 막기 위해 소비자금융시장을 양성화하는 제도적 환경조성이 무엇보다 절실한 시점이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개념 조차 생소했던 소비자금융업에 대한 관심부족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인식 역시 매우 부정적이었고, 1년에 100%를 훨씬 넘는 살인적인 고금리로 서민들의 불법사채 피해가 극에 달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여기에, 기본 운영체계마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사업자체를 영위하기조차 어려웠을 정도였다. 하지만, 최윤 회장은 소비자금융업에 대한 미래 성장가능성을 꿰뚫어 보는 혜안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를 위해선 제대로 된 자체 신용평가시스템 구축이 절실했다. 그래서 최윤 회장은 고심 끝에 결단을 내렸다.
 
소비자금융업에도 당시 제1금융권인 은행만 하고 있던 고객 정보교환뿐만 아니라, 과잉대출∙다중채무를 미연에 방지하고 고객 신용정보를 정확히 평가할 수 있는 글로벌 신용평가시스템의 선도적인 도입을 결정했다.
 
업계에선 가장 선도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자체 신용평가시스템 구축을 통해 소비자금융업계의 양성화 기반 조성뿐만 아니라, 스스로 투명하고 합법적인 윤리경영을 실천하여 안정적인 연체율을 유지하며 탄탄한 수익기반을 만들 수 있었다.
 
최윤 회장의 사업에 대한 열정은 소비자금융업 체계화에만 그치지 않았다. 소비자금융업에 대한 낙후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러시앤캐시라는 브랜드로 TV광고를 시작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브랜드 런칭 1년여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특히, 최윤 회장은 소비자금융업에 대한 인식개선과 건전화를 동시에 구현하지 못한다면 최고경영자로서 임직원들과 고객들과 나눈 약속된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사업추진과정에서 절실히 느꼈다.
 
또한, 소비자금융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 “혼자의 힘이 아닌, 업계가 함께 힘을 모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 국내 서민금융 활성화에 기여하며 소비자금융업을 대변할 수 있는 협회 설립을 주도하고자 마음 먹었다.
 
이것이 바로 ‘한국소비자금융협의회(Korea Consumer Finance Association, KCFA)’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자, 협회설립의 신호탄이 되었다.
 
또한 2000년 당시 협회운영을 사조직화하며 파행을 겪고 있던 한국소비자금융연합회와 한국대부사업자연합회를 통합하는 정상화 작업을 주도한 최윤 회장은 소비자금융업계의 자정과 공동 발전을 위해 새로운 협의체인 ‘(사)한국대부소비자금융협회’ 결성을 이끌었다.
 
이후에도 초대회장으로 회사의 부회장을 겸임시키는 등 음지(陰地)에 있던 소비자금융업의 양성화, 윤리화, 전문화를 통한 사회적인 인식 개선에 크게 이바지하였으며, 금융위원회로부터 대부업체 자율감독기관으로 공식인가를 받아 설립된 ‘한국대부금융협회’의 모태가 되는 결실을 일궈냈다.
 
'''“편견을 딛고 제도권 금융에 진입하다”'''
 
소비자금융업의 성공으로 사업적 자신감과 노하우를 쌓은 최윤 회장은 본격적으로 제도권 금융 진출을 시도했지만, ‘소비자금융업 출신’이라는 현실적인 장벽에 막혀 번번히 포기해야만 했다.
 
2010년 부산저축은행을 시작으로 제2금융권인 저축은행 인수작업에 돌입했다.
 
하지만 일부 저축은행은 부실이 너무 심했고, 때로는 소비자금융업 출신이라는 편견 때문에 저축은행 인수에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저축은행 인수작업을 시작한 2010년 이후, 최윤 회장은 7전 8기의 도전 끝에 결국 2014년 7월 예나래저축은행과 예주저축은행을 품에 안는데 성공한다. 금융업에 손을 댄지 10여년만에 이뤄낸 실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가 직접 대표를 맡아 저축은행의 사명을 OK저축은행으로 변경했다. 진짜 한국인이라는 긍지와 ‘토종 대한한국 저축은행’이라는 자신감을 반영해 '오리지널 코리안(Original Korean)'의 앞 글자를 따 OK저축은행으로 명명했다.
 
OK저축은행은 토종 만화 캐릭터인 태권브이(V)를 모델로 내세워 공격적인 영업에 나섰고, 그 결과 최윤 회장은 OK저축은행을 출범 2년여 만에 당당히 업계 2위(자산 5조원 돌파) 저축은행으로 올려놓았다.
 
만화영화 캐릭터인 태권브이를 활용한 데는 OK가 진정한 한국기업임을 알리고자 하는 최윤 회장의 독특한 아이디어와 전략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후 최윤 회장은 저축은행에 이어, 캐피탈 회사 인수에 도전했다. 이번에도 소비자금융업(대부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오해 탓에 아주캐피탈, 동부캐피탈 인수에 나섰지만 최종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15년에 한국시티은행의 자회사인 씨티캐피탈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이번엔 노조의 반대에 부딪쳤다. 다행히, 금융당국의 설득으로 노조가 반대를 철회하면서 삼수 끝에 2016년 OK캐피탈을 품으며 사세를 더욱 넓혔다.
 
'''“제도권 금융과 소비자금융업으로 해외시장을 활보하다”'''
 
최윤 회장은 중국의 개인금융시장은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반면에, 노하우와 전문성을 갖춘 금융기관은 제대로 없다는 판단 아래, 2010년 중국 천진을 시작으로 2013년 심천, 2014년 중경 현지법인을 설립하는 등 해외시장 개척에 속도를 냈다.
 
2년여 간의 노력 끝에 2012년 현지법인을 세웠고, 직원의 95% 이상을 중국인으로 채용하는 등 최적화된 현지화 전략을 추진한 결과 개업 2년여 만에 흑자달성에 성공했다.
 
최근에는 동남아 국가로 눈을 돌려 인도네시아에서 캄보디아에 이르기까지 해외시장으로 발을 넓혀 나가고 있다.
 
2016년 인도네시아의 시중은행인 안다라 뱅크를 인수해 'OK뱅크 인도네시아’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는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에 이은 4번째 인수사례로 알려져 있다.
 
같은 해 12월에는 2016년 12월 인도네시아 증시에 상장된 중소기업 전문은행 디나르뱅크와 주식거래계약을 체결했으며, 2018년 10월 인도네시아 금융감독원(OJK)으로부터 최종 인수를 승인 받았다. 최윤 회장은 앞으로 디나르뱅크와 OK뱅크 인도네시아를 합병해, 현지 중대형은행으로 키워나가겠다는 방침이다.
 
'''“장학사업으로 학생들의 꿈을 응원하다”'''
 
최윤 회장이 기업의 성장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교육과 장학사업’이다. 일본에서 어렵게 유년시절을 보낸 터라 배움에 대한 욕구와 갈급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다.
 
2002년 설립된 OK배정장학재단의 이사장이기도 한 최윤 회장은 해마다 중∙고등학생, 대학(원)생을 선발해 장학금을 지원해 오고 있다. 지금까지 국내•외 장학생 약5000여명에게 누적금액으로만 약140억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무엇보다, 장학재단 출연금이 본연의 목적에 적절하게 쓰이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프로그램 비율’이 92.54%로 압도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OK배정장학재단의 출연금이 일반관리비나 운영비 등으로 새지 않고 재단의 목적사업인 장학사업에만 온전히 쓰이고 있다는 의미로 미국 공익지수 평가기관(Charity Navigator)에선 66.7% 이상을 평균으로 간주하고 있다.
 
다른 그룹사의 재단과 비교해보면 아직은 작은 장학재단이지만 장학사업의 규모나 진정성, 지속성 등을 봤을 때 최윤 회장이 얼마나 내실 있게 장학재단을 운영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2012년 500명으로 시작한 '행복나눔장학금'은 매년 100명씩 장학생을 늘려가 2017년에는 1000명의 학생들에게 한 학기 등록금 전액을 지원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장학사업에 진정성을 더하여 중·고·대학교, 대학원 장학생들이 생활비 걱정 없이 공부만 할 수 있도록 ‘OK생활장학금’, ‘OK희망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매월 20만~200만원을 지원하는 장학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또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동포들에게 한국인의 얼을 심고,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일본내 민족학교에 대한 지원에도 역점을 두고 있다.
 
2015년부터 금강학교, 동경한국학교, 건국학교, 교토국제학교 등 일본내 민족학교 6곳에 총6억여원의 장학금을 지원해 오고 있다.
 
OK배정장학회의 ‘배’와 ‘정’은 아버지와 어머니 이름을 한 글자씩 따서 지었다고 한다. “배움을 게을리하지 말고, 성공한다면 사람과 배움의 가치를 소중히 하고 어려운 사람을 위해 힘써라”라는 가르침을 온전히 받들기 위해서다.
 
특히, 2014년 소비자금융업(대부업)이라는 한계를 넘어 OK저축은행을 인수한 뒤 대규모 자금이 투입돼 여유가 없을 때에도 최윤 회장은 장학금 지원규모를 줄이지 않았다.
 
이는 교육과 장학사업에 대한 최윤 회장의 높은 관심과 열정을 옅볼 수 있는 상징적인 대목이다.
 
실제로, 최윤 회장은 진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을 제대로 지원하기 위해 신청가정을 직접 방문해 고충을 듣고 희망과 용기를 나누는 등 도움이 필요한 학생이 있다면 기꺼이 발품을 팔고 있다.
 
최윤 회장은 아프로서비스그룹이 금융리더로 자리매김하기까지 많은 고객들의 성원과 지역사회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면서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지역사회와 활발히 소통하며 국가경제에 기여할 수 있도록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평소 신념과 의지를 다시한번 다지고 있다.
 
== 기타 ==
기업가로서 최윤 회장의 거침없는 행보의 키워드는 “상식을 넘는 과감한 도전”이다. 금융업에 혁신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그의 다음 목적지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 비인기종목 스포츠 후원에 관심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학창 시절 일본에서 럭비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2015년 대한럭비협회 부회장직을 맡아 남자 국가대표 럭비팀을 후원하고 있으며, 같은 이유로 남녀 필드 하키 국가대표팀을 후원 중이다. 유도와 골프도 후원하고 있다. 같은 재일동포 3세로 어릴때부터 경계인으로 차별을 겪으면서도 3대째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안창림 한국 국가대표 유도선수를 후원하고 있다. 2018년 세계선수권 대회 금메달을 획득한 안창림 선수는 2020년 도쿄올림픽 금메달을 정조준하고 있다. 또 여자골퍼 박세리 선수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OK저축은행 박세리 인비테이셔널’을 매년 개최해 오고 있다. ‘OK저축은행 박세리 인비테이셔널’은 1998년 박세리 선수가 미국 LPGA투어 메이저대회에서 우승을 하면서 당시 재외동포에게 큰 힘이 됐지만 이를 기념하는 대회가 없는 것을 안타까워한 최윤 회장이 직접 박세리 선수를 찾아가 이름을 딴 대회를 만들고 싶다고 전하면서 대회 주최가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 야구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1996년 일본 나고야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활약한 선동열 야구대표팀 감독과는 친분이 두텁다. 그 인연으로 당시 후원을 받지 못해 운영에 어려움을 겪던 전국농아인야구에 관심을 갖게 됐다. 물품지원으로 시작된 야구팀 후원은 리그 자체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국대회 개최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등 물심양면 후원을 확대하고 있다. 이렇게 시작된 ‘전국농아인 야구대회’는 올해로 10년째를 맞이한다.
* 프로스포츠단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 배구단'도 운영하고 있다. 2012년 계열사 러시앤캐시를 통해 모기업의 갑작스런 배구단 운영포기로 인해 존폐위기에 놓였던 드림식스 남자프로배구단에 대한 네이밍 스폰서 참여를 결정했다. 이후 2013년 ‘러시앤캐시 베스피드’(현,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 배구단)을 창설했다. 2018년 10월에는 모기업이 농구단 운영에서 손을 뗀 이후 인수할 기업을 찾지 못해 해체위기에 놓였던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위탁운영팀(현, OK저축은행 읏샷 여자 프로농구단)의 네이밍 스폰서를 1년간 맡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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