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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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디플레이션]] 해결을 위해 집권하면서부터 [[아베노믹스]]로 불리는 강력한 양적 완화 정책을 실시하였으며, 이로 인해 일본 증시에 활력이 붙고 일본 대기업들의 수출 경쟁력 증가 등의 효과를 거둔 한편,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 및 재정 부채 증가 등 부작용도 겪고 있다.<ref>{{웹 인용 |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6009046|제목 = 日 아베 총리 "새 정권 사명은 디플레이션 탈출"|저자 = 이충원|날짜 = 2012년 12월 26일|확인날짜 = 2012년 12월 27일}}</ref> 또한 이로 인해 엔화 가치가 떨어져 대한민국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외교적으로는 미일 동맹을 최우선시하는 등 대미 관계에 중점을 두고 있다. 군사적으로는 집단적 자위권을 추진, 전후 전쟁을 금지한 평화헌법을 개정하여 일본을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만드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과 한반도에 대한 과거의 식민지 침략에 대해서는 “침략의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등의 행보를 보여 [[제2차 세계 대전]] 때 피해를 입은 유럽 국가, 중국한국, 한국의중국 등의 비판을 샀다.<ref>[http://news.donga.com/Issue/List/02130000000005/3/02130000000005/20131011/58154945/1 글로벌 심층 포커스 - 아베의 ‘우익 본색’은 어디서 왔을까, A급 전범 외조부 DNA 이어받은 아베 ‘거침없는 역주행’, 동아일보 2013-10-12]</ref>
 
그가 총리직에 복귀한 지 1년이 되는 2013년 12월 26일, 선거로 공약한 대로 그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행하여 한국 및 중국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참배 후 그는 “일본을 위해 귀중한 생명을 희생한 영령에게 존숭의 뜻을 표했다.”라고 말한데 이어 “중국인들 및 한국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고없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국가를 위해서 순사한 사람들의 영령을 위로하는 것은, 국가지도자로서 당연한 책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앞서 그는 1차 아베 내각 시절, 야스쿠니를 참배하지 못한 것에 대해 “통한의 극치”라고 밝힌 바 있다바있다.<ref>{{웹 인용 |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6670820|제목 = 아베 총리, 야스쿠니 전격참배…한·중 강력 반발 (종합3보)|저자 = 연합뉴스|날짜 = 2013년 12월 26일|확인날짜 = 2013년 12월 26일}}</ref> 한편 대한민국 등에서는 이에 관한 비판 여론이 강하게 표출되었다.
 
자위대를 군대로 전환하기 위한 개헌 문제나, 과거사 인식 문제 등에 의해서 한국, 중국 등을 비롯한 2차대전제2차 세계 대전 피해국들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한편 아베는 비정규직 처우 개선, 최저임금 인상, 동일임금 동일노동 등 노동자 권리 향상,<ref>http://m.khan.co.kr/view.html?artid=201703302038025&code=990101</ref> 대학 무상화정책,<ref>http://m.khan.co.kr/view.html?artid=201703292138005&code=970203</ref> 다문화 정책 등 일부 진보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공통적으로 출산율 및 인구 감소에 따른 문제 개선과 연관된 해결책이다.
 
== 역대 선거 결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