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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조 -> 황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수도를 옮기면서 사회와 종교 체제에 중요한 변화를 일으켰다.<ref name="G168">Gibbon, 1906, III, [http://olldownload.libertyfund.org/Texts/Gibbon0105/DeclineAndFall/Vol03/PDFs/0214-03_Pt04_Chap18.pdf 168] {{웨이백|url=http://olldownload.libertyfund.org/Texts/Gibbon0105/DeclineAndFall/Vol03/PDFs/0214-03_Pt04_Chap18.pdf |date=20070614070902 }}</ref> 기원후 330년 그는 옛 그리스의 [[비잔티움]]을 2번째 로마로 삼아 천도를 단행하였으며 이 도시를 자신의 이름을 따 콘스탄티노폴리스(별칭이다)라고 개명하였다. 콘스탄티노폴리스는 동방과 서방 간 교역로에 위치한 요충지였다. 그리고 천도와 함께 콘스탄티누스는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도입한 행정 개혁을 다시 개선하였다.<ref name="BE">Bury, 1923, [http://penelope.uchicago.edu/Thayer/E/Roman/Texts/secondary/BURLAT/1*.html#1 1]}}<br />*Esler, 2000, p.1081.</ref> 그는 화폐(그가 도입한 [[솔리두스]] 금화는 매우 가치있고 바뀌어 달라지지 아니하고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게 되는 [[통화]]였다<ref name="E1081">Esler, 2000, p.1081.</ref>)를 안정시켰고 군사 조직을 개혁하였다. 콘스탄티누스 시대에 제국은 상당한 군사력을 회복하였고 안정과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또한, 이 시대에 [[기독교]]는 더는 국가에 박해받지 않았으며 황제가 관대한 특전을 베풀어서 황실의 비호를 받았다. 새로운 종교의 통일된 교리를 정하고자 [[공의회]]를 소집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운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아를]]에서 교회 회의를 소집했고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황제가 교회의 수장이라는 주장을 반영하였다.<ref name="B163">Bury, 1923, [http://penelope.uchicago.edu/Thayer/E/Roman/Texts/secondary/BURLAT/2*.html#5 163]</ref>
 
395년 이후 로마 제국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혁과 원칙이 꾸준히 계승되었다. 황조황제 세습 원칙은 철저하게 확립되어 이 해에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가 죽자 황위는 그의 아들 [[아르카디우스]]와 [[호노리우스]]가 각각 동부와 서부를 맡았다. 테오도시우스는 제국 동서부 양 지역을 통치한 마지막 로마 황제였다.<ref name="Br">{{백과사전 인용|제목=Byzantine Empire|백과사전=Encyclopaedia Britannica}}</ref> 동부 제국은 [[다키아]], [[마케도니아 지방|마케도니아]], [[아시아]], [[폰투스]], 오리엔트, [[트라키아]], 이집트로 이루어졌다.
 
3세기와 4세기에 동로마 제국은 사회, 문화가 서로마 제국보다 발달했고 재정 자원도 풍부해 [[공물]]을 지불함으로써 국가의 침략자를 회유할 수 있었고 [[용병]]을 고용할 여력이 있어서 대개 서로마 제국이 직면한 곤란한 상황을 도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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