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 사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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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산당]]은 [[1945년]] [[9월]]의 제7차 전당대회에서 당규에 "중국 공산당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이념과 중국 공산혁명의 실천을 통일한 사상, '마오쩌둥 사상'을 당의 모든 지침으로 한다."라고의 문구를 추가했다. 여기서 말하는 '마오쩌둥 사상'이란 이념으로서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지침으로 하면서, 그것을 중국의 실정에 적용시킨 혁명방식을 말한다.
 
아시아 일대의 공산당계에서는 마오쩌둥 사상이 제일 영향력 있는 공산주의로 평가되고 있다. [[이오시프 스탈린|스탈린]]({{llang|ru|Ио́сиф Ста́лин}}) 집권 시기에는 [[교조주의]]를 비판하는 쪽으로 발달했으며, 스탈린 사후 [[1960년대]] 소련이 [[니키타 흐루쇼프]]({{llang|ru|Ники́та Хрущёв}})를 중심으로 어느 정도 탈스탈린화 되고 수정주의 흐름이 생기면서, 기존의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고수하는 동시에 소련의 수정주의 노선과 대립한 사상이기도하다. 당시 중국의 산업화는 유럽에 비해 훨씬 늦었었다. 당시 중국은 1차 산업에 의존하여, 공장과 같은 2차 산업의 생산라인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본래 [[정통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주체는 산업 노동자가 되어야하는데, 산업이 활성화 되어있지 않은 중국에서는 산업 노동자 또한 없었다. 이 상황에서 모택동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노농동맹노선에 입각하여 [[농민]]들로 인한 혁명을 주로하고 그에 관한 사상을 정립화시키기 위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중국의 사정에 맞춰서 개조하게 된다.
 
[[마오쩌둥]]이 젊은 시절부터 밀접하게 지낸 [[농촌]]사회의 관찰로부터 도출된 [[중국]] 발전을 위한 모든 이상을 포함하고 있다. 그 내용은 대공무사(개인의 이익보다 공공의 복지를 우선한다), 대중노선(농촌대중의 의견에 정치적 지침을 요구하여, 그것을 이해시켜 모두 행동한다), 실사구시(현실로부터 배우고, 이론을 세운다) 등을 들 수 있다. 이 외에도 [[사회]]와 협조할 수 있는 [[개인주의]], 성인의 협력, 농촌으로부터 봉기하고 [[도시]]를 둘러싸 전술이론, [[세계]] 각국이 각자의 특성에 맞는 공산혁명을 실시하는 것으로, 제3차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다고 하는 〈중간지대론〉 등도 '모택동사상'에 포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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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마오쩌둥]]은 모순을 적대적 모순(敵對的矛盾, Antagonistic contradiction)과 비적대적 모순(非敵對的矛盾)으로 나눈 다음, 전자의 모순은 처음부터 끝의 과정까지 모순의 과정을 관통하며, 비폭력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모순, 즉 본질적 모순에 해당하고, 후자는 비폭력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모순이라고 하였다. [[마오쩌둥]]의 모순론에 따르면, 전자의 경우는 계급 전쟁에서 최일선에 해당하는 모순인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 사이의 모순이므로, 서로의 계급 전쟁에서 나름대로의 전략을 구사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며 또한, 갖가지 양태를 갖고 있는 모순으로 변화하게 된다.<ref>마오쩌둥 저, 김승일 역, 『실천론 모순론외』(범우사, 2001) pp. 74 - 80</ref> 예를 들면, 그것은 [[백인]]과 유색인종 사이의 싸움이 될 수 있으며, [[제국주의]]자와 [[반제국주의]]자, [[남성]] 권위주의자들과 [[여성]] 사이의 투쟁, 심지어 [[노동자]]와 [[농민]] 및 빈곤노동자 사이의 투쟁으로도 양태화될 수 있다. [[마오쩌둥]]은 이것들이 본질적인 모순에 해당하는지, 그렇지 않는지 구분하기 위해서는 결국 매개 모순의 특수성, 즉, 모순의 진행도를 인식하고 그것을 정합(整合)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모순의 진행도가 제각각인 것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자연변증법]]』(Dialektik der Natur)에서 논한 자연물 사이에서의 모순을 포함하여 모든 본질적인 모순이 가진 보편적인 것(보편성)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주요 모순은 상황에 따라 변할 수도 있다. [[마오쩌둥]]의 모순론에 따르면, 주요 모순은 모순성의 특수성을 정합성에 따라 인식한 후에 판단될 수 있지만, 동시에 그것은 상황에 따라 또 유동적으로 변한다. 이러한 입장은 혁명에 현실성을 부여한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이오시프 스탈린]]의 정식을 받아들인 기존의 공산주의자들은 다른 양태를 갖고 있는 모든 본질적 문제를 단적인 경제 관계 내에서 발생하는 투쟁으로 환원시키고 그것들의 속성을 근시안적으로 바라보는 경험주의적 단견을 갖고 있었다. 때문에 수많은 본질적 분쟁인 사건을 비본질적 분쟁으로 취급하는 결정적 오류를 범했다. 실제로 [[마오쩌둥]]의 비판 대상인 교조적인 공산주의자들은 농민은 소부르주아이기에 본질적인 혁명 동력이 없다고 봤으며,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는 양분적 대립 등을 비본질적 모순으로 보아 그것들의 중요성을 무시했다.<ref>하지만, 오히려 블라디미르 레닌과 이오시프 스탈린은 농민에게 혁명성이 존재한다고 보았다.</ref> 마오쩌둥은 이러한 기조를기조가 본래의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취지에 어긋나며, 교조주의자들의 입장을 '혁명에서의 소극주의 경향으로경향'으로 규정하고 단죄하였다. 그는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 사이의 계급 투쟁 관계를 단순히 무산자-임금노동자와 유산자-사업가의 싸움으로 표시되는 것으로 보지 않았으며, 그것의 본질은 사실 무산자와 유산자 사이라는 간극보다는 혁명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세력과, 반동으로 나가는 세력 사이의 간극이라고 본 것이다.<ref>마오쩌둥 저, 김승일 역, 『실천론 모순론외』(범우사, 2001) pp. 85 - 90</ref> [[마오쩌둥]]이 혁명의 시기인 [[1920년대]]에서 [[1940년대]] 사이에 농촌에 기반한 농민운동에 중점을 둔 것도 바로 위와 같은 철학적 지론에서 나온 것이다.
 
결국 마오쩌둥의 모순론의 정식대로라면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격화된 양분의 대립은 계급 투쟁의 성격을 갖는 것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대립은 모순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사회주의국가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고 하였으며, 사회주의국가 운영의 핵심은 이러한 모순을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것에 달렸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마오주의자들이 더더욱 현실 문제에 깊숙히 관여할 수 있게 하는 근거가 되었다. 마오쩌둥 사상은 제3세계 운동, [[여성주의]]와 흑인해방운동을 포함하여 갖가지 해방운동에 기반 이론을 제공한 것이다.<ref>허만원 저, 주혜란 역, 『생각의 역사』(이른아침, 2005) 참조</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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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신민주주의론은 인구의 대다수가 농민인 것과 동시에, 반공주의적 정서가 강했던 당시 중국 현실을 반영한 특수한 형태의 단계론인 것이다. [[마오쩌둥]]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에도 해당 시점의 단계를 신민주주의 단계라고 규정하였다. 따라서 그는 당시 중국 내 정파였던 민주연맹과 같은 자유주의자들과도 연합한다. 그리고 [[1958년]]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생산력을 산출하기 위한 [[대약진운동]]이 시작됐는데, 이도 역시 신민주주의론에 기초하여 시작된, 자주적인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생산력 증강 정책이기도 하였다. 국유화, 국가 주도의 산업 자본 투자, 외세의 개입 차단, 민족자본가들과의 통일전선 등을 통한 자력 발전 요소는 [[종속 이론]]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 반수정주의 ====
[[니키타 흐루쇼프]] 집권 이후 소련은 노골적으로 자본주의국가와의 타협을 시도했으며, 과거 이오시프 스탈린의 이론적 경향성에 대해서 청산주의 입장을 보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중소분쟁]]의 시발점이 되었다. [[마오쩌둥]]은 소련이 [[사회제국주의]](社會帝國主義) 정책을 취하고 있으며, 당을 수정주의로 지도하여 혁명의 퇴조를 가져온다고 비판하였다.<ref>{{cite journal |last1=Scalapino |first1=Robert A. |year=1964 |title=Sino-Soviet Competition in Africa |journal=Foreign Affairs |volume=42 |issue=4|pages=640–654 |jstor=20029719|doi=10.2307/20029719 }}</ref> 그리고 그는 동유럽 지역에서 소련의 수정주의를 격렬하게 비판하던 알바니아의 [[엔베르 호자]]({{llang|sq|Enver Hoxha}})와 협력하게 된다. 엔베르 호자는 스탈린 정식을 따르는 철저한 스탈린주의자로, 소련의 수정주의를 비판하는 마오쩌둥의 사상을 받아들였고, 그 결과 교류가 오가면서 마오쩌둥 사상은 '아시아의 반수정주의'로 거듭나게 되었다.<ref>{{Cite journal|last=Marku|first=Ylber|date=2019-05-30|title=Communist Relations in Crisis: The End of Soviet-Albanian Relations, and the Sino-Soviet Split, 1960–1961|url=https://doi.org/10.1080/07075332.2019.1620825|journal=The International History Review|volume=0|issue=0|pages=1–20|doi=10.1080/07075332.2019.1620825|issn=0707-5332}}</ref>
 
마오쩌둥 사상에서 드러나는 반수정주의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물질관·운동·양질전환·변증법의 일반적 도식에서 이오시프 스탈린의 정식을 따른다.<ref name="World History 2000. p. 769">''Chambers Dictionary of World History'' (2000), B.P. Lenman and T. Anderson, Eds., p. 769.</ref>
# 마르크스주의의 계승자는 블라디미르 레닌이며, 레닌주의의 계승자는 이오시프 스탈린이라는 것을 공식화한다.<ref>Graham Young, ''On Socialist Development and the Two Roads'', The Australian Journal of Chinese Affairs, No. 8 (July 1982), pp. 75–84, {{doi|10.2307/2158927}}.</ref>
# 중앙집중적 계획 경제·관제고지·집산화 등 사회주의경제 원칙을 철저히 수호한다.<ref name=mirsky>Mirsky, Jonathan. "[http://www.nybooks.com/articles/archives/2009/feb/26/the-china-we-dont-know/ The China We Don't Know]." New York Review of Books Volume 56, Number 3. February 26, 2009.</ref>
# 당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정주의를 적극적으로 차단한다.
# 자국우선주의에 기초한 외교가 아닌, 국제주의에 기초한 외교 노선을 취한다.
# [[사회민주주의]]·[[유럽공산주의]]·[[트로츠키주의]] 등과 같은 이탈 노선을 철저히 배격한다.
 
마오쩌둥 사상은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재평가가 되었고, 기존의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계승 및 발전시킨 대표적인 사상으로 인식되었다. 흔히, '공산당 ML파' 또는 'ML당' 등의 명칭을 갖고 있는 정당이 마오쩌둥 사상을 양대 사상으로 내놓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 마오주의 조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