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학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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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成均館大學校, {{lang|en|Sungkyunkwan University}})는 [[대한민국]]의 [[사립 대학|사립]] [[종합 대학]]이다.
 
[[1398년]] [[조선]]이 [[유교]] 건국이념에 따라 숭교방(崇敎坊)에 설립한 [[고려|고려시대]] 국립최고학부 [[성균관]](成均館)의 전통을 계승한다. 성균관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경학원]], [[명륜전문학교]] 등으로 격하되었다가 1943년에 폐교당했다. 그러나 [[1945년]]에 [[광복]]을 맞으면서 [[명륜전문학교]]가 부활하고<ref>[[:s:군정법령 제6호|군정법령 제6호]]</ref> 경학원이 성균관으로 명칭을 회복했다.<ref>[[:s:군정법령 제15호|군정법령 제15호]]</ref> 같은 해 11월 [[김창숙]] 전국유림대회를주도로 열어전국유림대회가 열렸고 전국에서 천여명의 유림들이 성균관 명륜당에 모였다. 이를 통해 일제가 박탈한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을 회복하고자 대학 설립을 위한 '성균관대학 기성회'가 조직되었고, 명륜전문학교 재단을 통합하여 '재단법인 성균관대학’이 설립되었다. 이듬해인 1946년 9월 25일 [[대한민국 문교부|문교부]]에 의해 성균관대학이 정식으로 인가되었으며, [[김창숙]]이 초대 학장 및 성균관장에 취임하였다.
 
[[1953년]]에 [[종합대학]]으로 승격하고, [[1979년]]에는 [[경기도]] [[수원시]]에 자연과학캠퍼스를 신축하였다. [[1965년]]부터 [[삼성그룹]] [[이병철]]이 재단 이사장을 지냈으며, 1979년 재단경영에서 손뗀 후, 봉명그룹(도투락)이 재단을 맡았으나, 열악한 재정상황으로 인해서 동문 및 재학생의 반발로 재단경영에서 물러난 후 한동안 재단없는 상황에 놓였다가 [[1996년 11월]]에 [[삼성그룹]]이 성균관대학교 재단을 재인수하였다. 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인문사회과학캠퍼스,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에 자연과학캠퍼스를 이원화하여 운영하고 있다. 교훈은 ‘인·의·예·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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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대학시대 (1945년 ~ 현재) ===
[[파일:김창숙 Statue.JPG|200px|섬네일|성균관대학교 창립자인 [[김창숙]]의 동상(인문사회과학캠퍼스 중앙학술정보관 앞에 위치)]]
발전기는 1945년 민족해방으로부터 현재까지이나, 그 중에서 제1시기로는 성장기, 제2시기로 발전기, 제3시기로 확충기를 들 수 있다. 성장기는 단과대학시대라 할 수 있는데 1945년에서 1953년 종합대학으로 승격 발전하기 직전까지가 이에 해당된다. 이 시기에는 우선 1945년 해방과 더불어 [[명륜전문학교]]가 부활하고<ref>[[:s:군정법령 제6호|군정법령 제6호]]</ref> 경학원이 성균관으로 명칭을 회복했다.<ref>[[:s:군정법령 제15호|군정법령 제15호]]</ref> 같은 해 11월 [[김창숙]] 전국유림대회를주도로 열어전국유림대회가 열렸고 전국에서 천여명의 대표 유림들이 성균관 명륜당에 모였으며,모였다. [[김구]]가 위원장을 [[이승만]]이 고문을 역임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성균관대학 재단을 촉성, 1000여 대표 참가로 전국유림대회
|url=http://db.history.go.kr/item/imageViewer.do?levelId=npfp_1945_12_10_v0002_0190
|출판사=자유신문|날짜=1945년 12월 10일}}</ref> 이 자리를 통해 성균관의 정통을 계승할 대학의 수립을 위하여 '성균관대학 기성회'가 조직되었으며 김창숙이 대표가 되었다. 이후 종전의 명륜전문학교 재단을 통합하여 재단법인 성균관대학이 설립되었으며,설립되었다. 전국이듬해인 유림들이1946년 기부금을9월 모았고25일 이석구가문교부로부터 재단법인성균관대학이 학린사의정식으로 거대한인가되었다. 토지재산을 희사하였다.과정에서 이듬해인전국 1946년향교로부터 9월재산을 25일갹출 문교부로부터받았고 성균관대학이전국 정식으로유림들이 인가되었다기부금을 냈다.<ref>[[:s:군정법령 제194호|군정법령 제194호]]</ref> 그리고 학봉 이석구가 재단법인 학린사의 거대한 토지재산을 희사하였다.
 
이처럼 성균관의 정통을 계승하여 출범한 성균관대학은 문학부와 정경학부의 2개학부였는데 동양철학과, 문학과(국문학전공, 영문학전공, 불문학전공), 사학과가 문학부에 속하고 법률학과, 정치학과, 경제학과가 정경학부에 속하였다. 그러나 1950년에는 [[한국 전쟁]]이 발발해 대학은 부산으로 피난하여 [[부산고등학교]] 안의 임시 천막교사로, [[부산광역시|부산시]] 동대신동의 임시교사로 전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