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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곤지가 7월에 사망했다는 기록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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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곤지는 [[개로왕]]의 아들이자 [[문주왕]]의 동생이라 한다. [[중국]]인이 쓴 사서 《[[송서]]》나 《[[양서]]》에는 곤지가 개로왕의 아들로 등장한다. 그런데 《[[일본서기]]》에서는 [[곤지왕]]이 [[개로왕]]의 동생이라 한다. [[일본]] 측 자료에 따르면, 그는 [[백제 비유왕|비유왕]]의 아들이 된다.
 
곤지는 [[458년]] 아버지 또는 형인 [[개로왕]]의 추천으로 정로장군 좌현왕(征虜將軍左賢王)에 봉해진다. [[461년]]([[백제 개로왕]] 7년) [[10월]] [[개로왕]]에 의해 형수(또는 계모)인 여성과 함께 일본에 파견되었다. [[백제]]로부터는 장군의 벼슬을 받았다. [[일본서기]]에또한 의하면일본으로 [[개로왕]]이 그를 [[일본]]에 보낸 것은 일본에 인질로 보내졌다고 한다파견된다.
 
[[461년]] 이후 곤지는 약 15년간 머물면서 간사이(關西) 지방 가와치(河內) 등을 개척하다가 [[475년]] [[고구려]]가 침입하여 [[개로왕]]이 죽고 [[문주왕]]이 도읍을 한성에서 웅진으로 천도하자 귀국하여 [[477년]] 4월 왕자 삼근을 태자로 책봉할 때 [[좌평|내신좌평]]에 취임하였으나 그해 7월에 갑자기 죽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그의 사망 원인이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취임하였다.
 
또한 다른 설화에 의하면 곤지는 [[개로왕]]의 동생이며 [[개로왕]]이 자신의 임신한 아내를 곤지에게 주었으며 곤지가 이를 데리고 일본에 도착했을 때 낳은 아들이 [[무령왕]]이라고 한다. 곤지가 일본에서 [[게이타이 천황]]이 되었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사후 하비키노시의 하비키노야스카마을에는 곤지의 위패를 모신 [[아스카베 신사]](飛鳥戸神社)가 세워졌다. 곤지는 아스카베마을의 수호신이자 조상신으로 숭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