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산 박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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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무부인(聖茂夫人)은 태조왕건의 후비이며 효제태자(孝悌太子)·효명태자(孝明太子) 및 법등군(法登君)·자리군(資利君)을 낳았다.
 
 
박수문과 박수경은 박지윤의 장남과 차남이다.
박수문과 박수경 형제는 왕건을 도와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는데 도움을 줘서 왕건의 총애를 받았다 그리고 개국공신이 되었다 고려의 2대 국왕 혜종이 왕건의 유지를 받든 박술희와 왕규의 알력으로 인해 제대로 정사를 펼치지도 못하고 왕식렴과 왕요 왕소 왕자의 간계에 속아 일찍 죽음을 맞이한다 정종(왕요)과 광종(왕소)은 고려사에 왕규가 혜종의 명으로 박술희를 유배를 보낸 후 숙청 한후 왕규도 반역을 모의 했기에 왕식렴과 왕요 왕소가 왕규를 모반의 혐의로 쿠데타를 일으켜 처단했다고 하지만 아마 이것은 왕식렴 일파가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에 정당성을 얻기 위한 굉장히 정치적인 거짓기록으로 볼수 있다 실제는 병권을 쥔 박술희를 유인해 살해한 뒤 국왕 혜종에게 박술희가 모반을 획책했다는 거짓보고를 올리고 거짓인줄 안 혜종은 박술희의 가족을 보호하기 자신의 또 다른 측근 왕규를 찾았지만 왕규도 이미 박술희의 죽음 이후 왕식렴 일파에 의해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 상태였다 혜종은 박술희와 왕규의 죽음을 다 안 이상 왕식렴 일파의 말을 믿던지 박술희와 왕규를 복권시키는 쪽 외에는 없었다 박술희와 왕규를 복권시키려던 혜종의 계획이 실패로 끝나고 아마 혜종은 폐위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정종과 광종은 쿠데타로 왕이 되었기에 그 어떤 정당성도 없고 왕위에 올랐어도 할수 있는게 없기때문에 역사를 조작하여 권력의 정당성을 얻고자 한것이다 혜종의 아들인 흥화군은 훗날 고려의 4대 왕인 광종에 의해 죽는다 그 광종을 옹립하는데 큰 도움을 준 집안이 그 당시의 평주박씨(平州朴氏)다.
평주박씨의 박수문 박수경 형제는 왕소를 도와 3대 국왕 정종에 이어 왕소를 4대 국왕 광종이 되게 하였다 광종 15년(964)에 박수경의 아들인 좌승(佐丞) 박승위(朴承位)·박승경(朴承景)과 대상(大相) 박승례(朴承禮) 등이 참소를 당하여 옥에 갇히자, 박수경은 울화병으로 죽었다. 뒤에 여러 차례 추증되어 사도(司徒)·삼중대광(三重大匡)이 되었다 박수문 박수경 형제의 평주박씨 집안은 박수경의 아들들인 장남 박승위 차남 박승경 삼남 박승례가 무고로 인한 광종의 명으로 모두 유배를 가게되었고 광종의 재위기간동안 그리고 광종의 후손들이 왕으로 있는동안 정계진출을 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