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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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팩토리에서 제작 활동:30대후반~40대 ===
[[1964년]](35세)부터는 뉴욕에 《[[팩토리 (스튜디오)|팩토리]]》(''The Factory'')라고 하는 스튜디오를 짓는다. 팩토리는 알루미늄 포일과 은빛의 그림물감으로 덮인 공간이며, 마치 공장에서 대량생산 하는 것 같이 작품을 제작하는 것을 이미징하여 만들어졌다. 그는 여기서 예술 노동자(art worker; 아트 워커)를 고용해, 실크 스크린 프로세스 프린트, 구두, 영화 등의 작품을 제작 한다. 팩토리는 [[믹 재거]]([[롤링 스톤즈스톤스]]), [[루 리드]]([[벨벳 언더그라운드]]), [[트루먼 커포티]](작가), [[에디 세즈윅]](모델) 등 아티스트가 모이는 장소가 된다.
 
[[1965년]](36세),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 이하 V.U.)의 데뷔 앨범을 프로듀싱 한다. 워홀은 V.U.의 연주를 듣고 공동 작업을 신청해, 배우 겸 모델인 니코를 데려와 합류시킨다. [[1967년]] 3월 발매한 그들의 데뷔작 《벨벳 언더그라운드 & 니코》(''The Velvet Underground & Nico'')에서는 프로듀스와 자켓 디자인을 다루었다. 실크 스크린 프로세스에 의한 〈바나나〉를 그린 레코드 표지는 유명해 졌다. 전위적 음악이기 때문에 앨범은 별로 팔리지 않았지만, 이후 재평가되었다. 워홀은 V.U.의 악곡을 영화의 사운드 트랙에도 이용했다. 두 번째 앨범을 제작할 무렵에는 워홀과의 관계도 끝난다. 그들과의 관계는 영화 《루 리드: 로큰롤 하트》(''Lou Reed: Rock and Roll Heart'')에 그려져 있다. 또 워홀의 사후 멤버인 리드와 케일은 재결성해 《드렐라를 위한 노래》(''Songs For Drella'', [[1990년]])라는 추모곡을 만들었다. (Drella는 [[드라큘라]]와 [[신데렐라]]를 조합한 합성어이며, 워홀에 대한 그들의 인상을 나타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