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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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 = [[대한민국 육군|육군]] 특전사령관
|참전 =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경력 = 육군 제1공수특전여단장 출신
|경력 = [[신민주공화당|신민공]] 대표전임고문(1987년 12월 15일~1988년 1월 31일)
}}
'''정병주'''(鄭柄宙, [[1926년]] ~ [[1989년]] [[3월 4일]])는 [[대한민국]]의 [[군인]] 겸 [[정치가]]이다. 본관은 [[봉화 정씨|봉화]](奉化)이고 [[경상북도]] [[영주군|영주]] 출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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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군]]에서 출생하였다. [[1949년]]에 [[육군사관학교 (대한민국)|육군사관학교]] 9기로 입학하여 [[1950년]] 졸업하였고 그 해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육군 제1연대 소대장으로서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 군인으로서 정도를 걸은 참다운 군인으로, [[5·16 군사정변]] 당시에는 쿠데타 세력에게 비협조하다가 체포되어 [[경회루]] 기둥에 묶여 있다가 영창에 가기도 했다.<ref>{{웹 인용|url=http://webzine.kdemocracy.or.kr/webzine/200912/sub/sub1.asp?idx=762&seartext=|제목=12.12군사반란과 어리석은 군인 김오랑|성=김|이름=준철|웹사이트=희망세상|출판사=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확인날짜=2011-10-03}}{{깨진 링크|url=http://webzine.kdemocracy.or.kr/webzine/200912/sub/sub1.asp?idx=762&seartext= }}</ref>
 
이후 [[1967년]]에 육군 제1공수특전단장을제1공수특전여단장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육군 특수전사령부|특전사]]와 인연을 맺었으며 [[1974년]]에 육군 소장으로 승진과 동시에 대통령 경호실 차장으로 있다가 그 이듬해인 [[1975년]]에 육군 특전사령부의 사령관으로 임명됐다. [[1979년]] [[전두환]]이 [[12·12 군사 반란]]을 일으키자 [[장태완]] 육군 수도경비사령관과 같이 전두환의 군사반란을 막아보려 했지만, 그가 준장 진급에 도움을 준 [[박희도 (1934년)|박희도]]와 [[최세창]]에게 배신당했다. 정병주는 전두환의 군사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직속 부하에 의해 총격을 받아 부상을 입었으며 그를 보호하려던 비서실장 [[김오랑]] 소령도 쿠데타군의 흉탄에 맞아 숨졌다.
 
[[1980년]] [[1월 20일]], 정병주는 현역부적합 처리되어 육군 소장으로 강제 예편되었다. 이후 정병주는 전두환이 일으킨 12·12 군사 반란에 대한 부당성을 주장하다가 [[1989년]]에 목매달아 숨진 채 변사체로 발견됐다. 군 당국에 의해 자살로 처리되었지만 정병주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는 점에서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는 의혹이 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도 정병주의 죽음에 대해 논란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