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시프 스탈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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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이전인 [[1939년]]에는 [[나치 독일]]과의 [[독소 불가침 조약]]을 맺었다. 독일이 1941년 침공하여 발발한 [[독소전쟁]] 초기에는 제대로 된 군사정책을 발휘하지 못하여<ref>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57513&yy=2011</ref><ref>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37088&yy=2012</ref> 수도인 [[모스크바]]까지 위협받았으나 [[모스크바 공방전]], [[스탈린그라드 전투]], [[쿠르스크 전투]]를 계기로 전세를 역전시켜, 결국 독일군의 항복과 함께 소련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승전국이 되었다.
 
정치적으로는 철저한 정적 숙청과 동지들마저 반혁명 혐의로 숙청하여 그의 지위를자위를 확고히 했다. 경제발전과 계속된 승전 등의 성과를 바탕으로 철저히 우상화되었으나 죽음 이후, [[니키타 흐루쇼프]]에 의해 강력한 비판을 받고 격하당했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 붕괴 이후 공산주의 변질과 정적 숙청을 자행한 독재자로 평가되었다. 소련 붕괴 이후 사람들이 삶이 어려워지고 국가 위상이 곤두박침에 따라 [[신스탈린주의|스탈린을 그리워하는 여론]]이 높아졌다.
 
집권 이전에는 '슨상님선생님'이라는 애칭이 있었으나, 집권기간 중 스탈린은 '만능의 천재', '빛나는 태양', '삶의 지주', '위대한 조직자', '위대한 지도자', '위대한 선생이며 친구'로서 찬양을 받았고, 한때는 [[러시아 정교회]]의 부[[주교]]로부터 공공연히 '우리의 아버지'로도 불렸다. 사후에는 공산주의를 변질시킨 독재자로 재평가받고 '조지아의 인간 백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의 수많은 가명 중 하나인 '스탈린'이라는 가명은 '강철'을 뜻하며, [[트빌리시]] 신학교 시절의 [[필명]]으로 쓰던 것이 굳어져서 본명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스탈린의 본래 이름은 [[조지아어]]로 '''이오세브 베사리오니스 제 주가슈빌리'''({{llang|ka|იოსებ ბესარიონის ძე ჯუღაშვილი}}, {{llang|ru|Ио́сиф Виссарио́нович Джугашви́ли|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주가시빌리}})이며, '''소소'''({{llang|ka|სოსო}})는 그의 초명인 동시에 애칭이었다.<ref name="soso1"/>
 
== 생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