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음 법칙: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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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자→임쟈(경신록언석, 1796년) 1개가 있으며 20세기 초반인 일제 강점기때부터는 많이 등장한게 된다. 일제 강점기 시대인 1920년에 집필된 조선어사전을 보면 녀름(한영자전, 1890)→여름(조선어사전, 1920), 녑구레(한불자전, 1880)→엽구리(조선어사전, 1920), 님금(한영자전, 1890)→임금(조선어사전, 1920), 닙(葉(한불자전, 1880)→입(조선어사전, 1920)(葉), 니(한영자전, 1890)→니/이(齒)(조선어사전, 1920) 니마(한영자전, 1890)→니마/이마(조선어사전, 1920), 니야기(한영사전, 1890)→이야기/니야기(조선어사전, 1920), 닐곱(한영자전, 1890)(七)→ 일곱/닐곱(조선어사전, 1920), 닐흔/일흔(한불자전, 1880)→일흔/닐흔(조선어사전, 1920), 념통(한영자전, 1890)→염통/념통(조선어사전, 1920), 닙다(한불자전, 1880)→입다/닙다(조선어사전, 1920), 닛다(한불자전, 1880)→잇다/닛다(조선어사전, 1920) 등의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어두에 ㄴ이 오던 단어가 '여름'이나 '엽구리'의 예처럼 완전히 ㅇ으로 표기법이 바뀌어 있거나 ㄴ/ㅇ의 2가지 방식으로 표시되는 등 표기법이 획일화 되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ref>조규태(1999)</ref>
 
두음법칙에 반대하는 학자들은 대대손손 써오던 성명 표기에게까지 두음법칙을 적용시키는 것은 사실상 성을 갈은 것이 아니냐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두음법칙으로 인해 표기법이 가장 많이 바뀐 성씨인 이씨(李)의 한글 표기법은 두음법칙이 제정되기 이전의 1400~1900년대 왕명으로 간행된 문헌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니'로 수백년간 표기되어져표기되어 왔으며, '리'나 '링'과 같은 이표기는 번역박통사나 삼운성휘와 같은 번역서적에서 간간이 보이나 이는 모두 중국어 한자 발음 표기법인 것으로 보여진다. '이'라고 표기된 예는 공적인 문서에서는 전혀 발견이 되지 않으며, 18세기 중반에 집필된 박리화(朴履和)의 만고가(萬古歌)에 최초로 이태백(李太白)으로 등장한다. 또한, 19세기 후반에 출판된 烈女春香守節歌(열녀춘향수절가)에도 이할임(李翰林)으로 등장하나 두개 모두 문학 작품이다. <ref>李자를 ‘니’로 표기한 예: 왕명으로 추진한 공적인 사업으로 간행된 문헌이나 기타 중요한 문헌을 보면 거의 다 ‘니’로 표기되어 있다. 특히 조선왕조 말기인 開化期 때 나온 우리 나라 최초의 한글 전용 신문인 ‘독립신문’에도 ‘니’로 표기되어 있는 것을 볼때 開化期 때까지도 일반적으로 ‘李’ 자를‘니’로 표기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杜詩諺解 初刊本 (성종 12년 : 1481) - “셩이 니가 (姓李的)“ ‘李’자를 모두 ‘니’로 표기함.
* 訓蒙字會 [중종 22년(1527). 아동에게 한자의 音과 뜻을 정확하게 가르치기 위해 지은 책] - ’李’ 자의 音과 뜻을 ‘외엿니’ 라고 기록함. (참고로 ‘柳’ 자는 ‘버들류’로 기록되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