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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수춘(壽春)을 시찰하던 등애는 운하를 통해 물을 끌어들일 구상을 하고 <제하론(濟河論)>을 지어 [[사마의]]에게 바쳤다. 이것이 받아들여져 운하가 완성된 후 수해가 줄고 군사들과 식량을 보내기가 편리해졌다.
 
[[조모 (위나라)|조모]](曹髦)가 등극한 후 방성정후(方城亭侯)에 봉해졌다. [[251년]]에는 조정에 글을 올려 남흉노의 세력을 둘로 나누어 그들의 힘을 약하게 할 것을 건의하기도 했다. [[255년]] [[관구검]](毌丘倹)이 [[문흠]](文欽)과 함께 반 사마씨 봉기를 일으키자, 당시 연주자사였던 등애는 군사 만여 명을 이끌고 낙가성(樂嘉城)을 점거하여 [[문흠]]을 유인했다. [[문흠]]은 자신의 군사가 더 많다고 여기고 낙가성으로 쳐들어왔으나 이미 [[사마사]](司馬師)의 대군이 당도해 있었기에 끝내 패주했다. 등애는 [[문흠]]을 끝까지 추격하여 [[오 (삼국)|오나라]]로 달아나게 했다. 반 사마씨 봉기가 진압된 후 공로를 인정받아 안서장군(安西將軍)을 대행하고 방성향후(方城鄕侯)가 되었다.
 
=== 북벌 방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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