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타:안토니오의 친구. 델 로치 상사 창고[[서기]]때부터 같이 일했다.[[글]]도 모르는 자신과는 달리-근대 유럽에서 [[지식인]]들은 [[귀족]]들이었고, 상인들은 글도 모르는 사람도 있었을 정도로 학문이 없었다고 한다.- 박식한 안토니오를 따르며 같이 고생한 사이이다.안토니오는 [[건강]]이 나빠져 은퇴하게 되자 포르타를 [[주주 회의]]에서 자신의 뒤를 이어 델 로치 상사를 경영할 후계자로 정하고 ,성격이 차분한 팔라디오에게 부탁하여 성격이 적극적이고, 판단도 빠르지만 성급피한 단점이 있는 포르타를 보좌하도록 한다. 훗날 유명훈은 델 로치 상사의 뒤를 이어 수백년동안 내려온 장수기업인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 캄파넬라 상사의 자료실에서 우연히 안토니오 꼬레아에 대한 단서들을 찾았는데, 안토니오 꼬레아가 개성상인의 전통 [[회계]]방식([[사개송도치부법]])으로 쓴 회계장부와 포르타가 동양에서 온 은인이라며 안토니오를 칭찬한 글이었다. [[라틴어]]로 포르타(Porta)는 [[문]]을 뜻한다.
*알베르토:안토니오의 라이벌.안토니오가 독일 [[푸거|푸거 가]] [[부도]]에 따른 [[한자 동맹|한자]](Hansa)상인들의 연쇄[[부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사이의 오랜 갈등이 [[프라하 창밖 투척사건|프라하 투척사건]]을 계기로 한 [[전쟁]]으로 터진 [[30년 전쟁|30년전쟁]]에서 개신교와 가톨릭 중 어느 편을 들어 전쟁특수를 누릴 것인가를 논하는 토의(토론의 일종. 주제를 정해서 찬성과 반대의견을 주장하는 찬반토론과 달리, 찬반을 따지지 않고 의견을 논하는 회의)하는 회의 때 안토니오가 놀랄만큼 해박한 국제[[시사]] 지식과 [[외국어]]([[독일어]])구사능력 그리고 유럽사회의 비주류이지만 재력이 뛰어난 [[유대인]]들과도 [[인맥]]을 갖고 있는 유능한 상사원이다.[[30년전쟁]]당시 델 로치 상사가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사이에서 줄타기를 하자, [[개신교]]와 거래하지만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피렌체 공화국|피렌체]]공화국에서 집사로서 일한다. 그의 능력을 생각했을 때에 심각한 몰락이다.
*피에트로 모란테:유명훈 부장의 친구. [[한국전쟁]]때 한국에 온 [[이탈리아군]] [[대령]]과 [[타자기]]로 [[문서]]를 작성하는 여성[[노동자]] 사이에서 태어나 [[용산]]에서 살았다.외할머니가 예뻐하셨고 친구들도 많아서 유년시절이 행복했으며,[[고등학생]]때 [[이탈리아]]에 건너가 자동차 공학을 공부했다.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인 캄파넬라 상사에 자동차 [[디자이너]]로 취직했으며,유명훈 부장이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에서 부사장으로 일하게 되자 한국과 이탈리아 사이의 [[문화]]차이에 대해 설명함으로써 적응을 돕는다.예를 들어 자동차 회사에서 기기 고장사고가 났는데 이탈리아 노동자들은 보기만 하고 전혀 나서지 않았다.이를 보면서 유명훈 부사장이 화를 내려고 하자,모란테는 한국의 전통사고가 [[공동체주의]]라면 이탈리아는 [[개인주의]]라고 설명하여 [[노동자]]들의 행동이 근무태만이 아님을 해명한다. 이탈리아 노동자들은 회사와 맺은 단체협약<REF>[[노동조합]]이 회사와 교섭하는 단체교섭으로써 정한 약속이다.고용유지,노동시간,임금 등 노동자의 [[권리]]와 관련된 것이기에 아주 중요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산별노조와 기업별 노조 모두 할 수 있다.</REF>에근로계약서에 따른 노동만 하기 때문에 단체협약에근로계약서에 없는 기기수리를 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설명한 것이다.한국말과 이탈리아말에 능통.
*[[갈릴레오 갈릴레이]]:실존인물,안토니오의 [[멕시코]] 항해를 수학이론 제공으로써 도움. 피렌체공화국이 고향인 갈릴레오 교수(피사대학교 수학교수)는 베네치아 공화국이 고향인 갈바와의 사이에서 아들과 두 딸을 낳았다. 아들은 석학인 부친의 연구를 돕고, 두 딸은 [[교황 클레멘스 1세|성 클레멘스]] 수도원안의 [[수녀원]]에서 살았던 터라 가끔 따님들을 보러 왔다가 미카엘 수사로부터 델 로치 상사의 부지배인인 안토니오가 멕시코에 장삿배를 타고 가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자신이 연구한 수학이론으로써 안토니오가 무탈하게 항해를 준비하도록 도왔던 것.
*레오나르도 로렌제티 : [[자작]], 나폴리 왕립공작소 총재.[[자작]].[[에스파냐]] [[펠리페 2세]] 국왕의 친척. 그래서 로렌제티 자작이 안토니오의 이야기를 듣고 교황청에 [[베네치아 공화국]] 피아제타 공장에서 생산한 유리를 납품하자매매계약서를 첨부하여 로마교황청 사무처에서 주관하는 유리입찰에 응하자, 유리입찰을 놓고 다투던 메디치 가문에서도 견제하지심각하게 못한다받아들인다. 기슬란티가 이름만 빌려서 응찰한 것쯤이야 교황청에서 막을 수 있는 문제라고 말하자, 루시아니 공녀가 "그렇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급하게 내가 온 것 아닙니까? 로렌제티 자작이 누구인가? 펠리페 2세 폐하의 가까운 인척인데... 정식으로 매매계약서까지 첨부했다는데... 그렇게 하면 트집잡을 것이 없다는 말이야!"라고 대답한다. 로렌제티는 남부 이탈리아가 차별받는 현실에 고민하고 있었다. 똑똑한 승업이 로렌제티 자작의 마음을 읽어내고, 로마교황청와 유리를 거래하면 남부 이탈리아가 로마 가톨릭 교회에 진출할 수 있다고 설득한 덕분에 로마교황청에 [[수수료]] 없이 유리공개입찰에 참여하여 거래한다.만일 거래가 뜻대로 되지 않아도 안토니오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을 정도로 너그러운 사람이다.
*고졸리에 : 로렌제티 [[자작]]과 같이 일하는 나폴리 왕립공작소 법률고문. 안토니오가 [[로마법]]에 해박하자 진지하게 토론한다. 글을 쓰기 위해 [[로마 시민권|로마시민법]]도 공부한 오세영 작가의 해박한 [[지식]]을 엿볼 수 있는 인물.
*루시아니 공녀: [[토스카나 대공국|토스카나대공국]]의 공녀. [[금융]][[부르주아지|자본가]] 가문이자 [[로마 가톨릭교회|가톨릭교회]]의 [[교종 (동음이의)|교종]], [[프랑스 왕국|프랑스]] 왕실의 왕비등을왕비(언니가 프랑스 왕실의 왕비인 카트린 데 메디치이다.)등을 배출한 명문가인 [[메디치가|메디치 가]]의 따님이다. [[베네치아 공화국]] 델 로치 상사를 대표하는 안토니오와 유리입찰을 놓고 최선을 다해 다투고, 다툼에서 지자 안토니오에게 "그 완고한 로렌제티 자작을 무일푼으로 부려먹다니 프란체스코 카를레티에게 들은 것처럼 역시 대단하군요. 안토니오 코레아. 정말 탄복했어요. 이건 비르투오소(virtuoso,[[전문가]])를 만난 기념입니다. 이탈리아는 당신같은 비르투오소가 필요해요"라면서 17세기 유럽사람들에게 귀한 물건이었던 [[손수건]]을 선물할 정도로 자신의 패배와 상업에 능통한 승업의 능력(나폴리 공작소 로렌제티 자작의 마음을 읽음, [[유리]]를 제작하는데 필요한 [[규사]]를 델로치델 로치 상사가 산 내역, 아카데미아 델 치멘토가 유리를 운반하는데 들어가는 비용등을 근거로 한 정확한 입찰가격 계산 등)을 겸손하게 인정한다. 메디치 가를 대표하여 17세기 [[가톨릭교회]]내의 권력이었고, 팜필리 신부의 견제로 약해진 가문의 힘을 되살리려던 바르베리니 가, 베네치아 공화국 델 로치 상사와 경쟁하던 피렌체 아카데미아 델 치멘토 상사와 함께 [[유리]]입찰을 주도한 여장부([女丈夫]성격이나 행동이 시원시원하고 씩씩한 여자를 ‘대장부’에 빗대어 이르는 말(다음국어사전))이다. [[에스파냐]] 왕실의 인척인 로렌제티 총제에게자작과 성 라테리노 대성당에서 만난 자리에서 "승산없는 싸움을 벌인 용기가 대단하더군요"라고 자신감을 보이고, "[[에스파냐]] 왕실이 [[네덜란드 독립 전쟁|네덜란드 독립전쟁]] 기간이라 군자금을 메디치 가로부터 빌려쓴 10만 [[두카트]] [[채무]]를 무이자로 1년뒤로 미루어드릴 것이니(회계용어로 이월이라고 한다.), 입찰을 그만두라"는 제안을 했다. [[대화]]와 타협은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임을 알고 있었던 셈이다. 사람을 읽는 능력도 뛰어나서, 아카데미아 델 치멘토의 기슬란티에게 "기슬란티, 그대는 아직도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오? 내가 알기로는 안토니오 코레아라는 [[아시아인|동양인]]은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라던데? 프란체스코 카를레티에게 들은 기억이 나서 피렌체에 연락해보니, 예상대로 카를레티가 [[동양]]에서 데려온 [[노예제|노예]]라더군. [[예수회]] [[수사]]에게서 법률(로마시민법)도 많이 배웠고, 판단력도 날카롭다는 거야!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나요"라고 했다.
=== 에스파냐 ===
* '''호세 곤잘레스''' : [[스페인|에스파냐]] [[세비야]]에서 안토니오와 만난 [[항해사]]. 안토니오보다 3살 어리다. 성격이 붙같아서 선주들과 부딪히기 일쑤이지만(그래서 안토니오와의 항해를 마지막으로 배를 타지 못하고, 술로 세월을 보낸다.), 선원들에게는 신과 같은 사람이라 다들 유능하고 씩씩한 호세 항해사와선장과 같이 일하고 싶어한다. [[항해]]지식, [[선원]]을 부리는 기술 모두 뛰어나다. 안토니오와 처음에는 갈등이 있었지만, 서로의 실력을 존중하여 친구가 되었다. 원작을 읽어보면 두 사람이 항해계획을 세심하게 준비하고, 실행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안토니오가 [[에스파냐어]]를 유창하게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왜냐면 중미 멕시코에 갔을 때에, 안토니오가 원주민 노인과 [[에스파냐 어]]로써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1618년]] [[중앙아메리카|중미]](원작에는 [[신대륙]])에 가서 베네치아 유리 장사를 하려는 안토니오와 같이 유럽과 중미 멕시코, [[쿠바]]를 여행했다. 그것도 안토니오가 베네치아 유리를 식민지 관리와 부유층들에게 3만 5천 두카트에 팔고 돌아갈 때에 [[연지벌레]](오세영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멕시코 산 국화과 식물에 기생하는 [[깍지벌레]]. 암컷을 [[증기]]에 쪄서 죽게 한 뒤에 가루를 내어, 비둘기의 피라고 불릴 정도로 진한 붉은색 [[천연색소]]를 낸다고 한다.)를 싣고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가는 가장 가까운 거리이지만, 바람이 불지 않는 [[말의 바다]]를 거쳐 유럽으로 건너가려고 하는 무모한 여행을 같이 했다. 너그러운 안토니오의 인품을 좋아해서였다. 식민지 원주민들의 한과 고통이 느껴지는 이야기인데, 에스퍄냐 관리들의 괴롭힘을 피해 말의 바다에서 [[물고기]]를 낚고 후술할 링밥을 이용해 집에 돌아온 [[아즈텍 문명|아즈테크]] [[인디오]] 노인과 선원들의 경험, 호세 항해사의 숙련노동에서 나오는 지혜, 마음이나 몸이 허약한 선원, 사관이나 호세 항해사와 부딪힐만한 선원들은 포르타가 탄 엘도라도 호에 태워서 선원들과의 갈등이나 인명손실을 미리 막는 빈틈없는 계획 덕분에 무시히 실행했다. [[대서양]] 여행을 많이 한 터라 선장인 호세와 선주인 안토니오가 무풍지대인 말의 바다에 일부러 들어왔고, 왜 그랬는지까지를 정확하게 읽은 [[선원]]들이 [[반란]]을 일으키기 직전, [[바하마|바하마제도]]의 바닷물이 소용돌이치면서 배를 움직인 덕분에 다들 살았다. 1940년 미국의 [[해양학|해양학자]]가 링 밥(Ring Bab)이라고 부른, 버뮤다 바다에서 바닷물이 [[멕시코 만류]]의 영향을 받아 소용돌이를 치는 현상을 이용한 것인데, [[편서풍]]이 성 엘모의 불과 엘도라도 호를 움직인 덕분에 [[대서양]]을 거쳐 유럽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으로 돌아옴. 덕분에 추위에 약한 연지벌레를 팔아서 많은 이익을 남겼다.
=== 포르투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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