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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리표 =#넘겨주기 [[정업원 터]]
{{문화재 정보
| 이름 = 정업원 터<br />(淨業院 터)
| 그림 = Replace this image male-ko.svg | 그림크기 = 150
| 그림설명 =
| 국가 = {{국기그림|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유형 =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1호 ~ 제100호)#제1호 ~ 제100호|유형문화재]]
| 번호 = 5
| 지정 = [[1972년]] [[5월 25일]]
| 해지 =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숭인동 산3번지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 =
| 참고 =
| 면적 =
| 수량 = 1기
| 전승지 =
| 전승자 =
| 지도 = 대한민국
| 띄움 =
| 꼬리표 = 정업원 터
| 너비 =
| 대체지도 =
| 설명 =
| 위도도 = 37 |위도분 = 34 |위도초 = 46.87 |남북 = N
| 경도도 = 127 |경도분 = 0 |경도초 = 58.59 |동서 = E
| 웹사이트 =
| 문화재청 = 21,00050000,11
}}
 
'''정업원터'''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숭인동]], [[조선시대]]의 단종비 [[정순왕후 (조선 단종)|정순왕후 송씨]](1440~1521)가 궁에서 물러난 뒤 평생을 살았던 곳이다. [[1972년]] [[5월 25일]]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다.
 
== 개요 ==
이곳은 단종비 [[정순왕후 (조선 단종)|정순왕후 송씨]](1440~1521)가 궁에서 물러난 뒤 평생을 살았던 곳이다. 정순왕후는 단종이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떠나자 이곳에서 단종이 있는 동쪽을 바라보며 안녕을 빌었다. 단종이 죽은 후 1521년(중종 16) 82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단종의 명복을 빌며 평생을 보냈다. 훗날 영조가 이곳이 정순왕후가 머물렀던 곳임을 알게 되어, 1771년(영조 47)에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라는 비석을 세워 표지로 삼도록 하였다.<ref name="현지">현지 안내문 인용</ref>
 
원래 정업원이란 양반 출신의 여인들이 출가하여 머물던 절을 말한다. 정압원과 마주하는 봉우리에는 '동망봉(東望峰)'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이곳은 정순왕후가 단종이 있는 영월 쪽을 좀더 잘 보기 위해 올랐던 곳이라고 알려져 있다. 정업원 터 비석에는 '정업원 예쑈터 신묘년(영조 17) 9월 6일에 눈물을 머금고 쓰다(淨業院舊基歲辛卯九月六日飮淚書)' 라는 글씨와 비각 현판에 '앞산 뒷바위 천만년을 가오리(前峰後巖於千萬年)' 라는 글이 있다. 이것은 모두 영조의 친필이다. 이 비석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을 한 비각 안에 있다.<ref name="현지" />
 
== 같이 보기 ==
* [[정순왕후 (조선 단종)|정순왕후 송씨]]
 
== 각주 ==
<references/>
 
== 참고 자료 ==
* {{문화재청 문화재|21,00050000,11}}
 
[[분류: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분류:서울 종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