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 사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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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이론 ==
=== 반수정주의 ===
[[니키타 흐루쇼프]] 집권 이후 소련은 노골적으로 자본주의국가와의 타협을 시도했으며, 과거 이오시프 스탈린의 이론적 경향성에 대해서 청산주의 입장을 보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중소분쟁]]의 시발점이 되었다. [[마오쩌둥]]은 흐루쇼프가 [[사회제국주의]](社會帝國主義) 정책을 취하고 있으며, 당을 수정주의로 지도하여 혁명의 퇴조를 가져온다고 비판하였다.<ref>{{저널 인용|last1=Scalapino |first1=Robert A. |year=1964 |title=Sino-Soviet Competition in Africa |journal=Foreign Affairs |volume=42 |issue=4|pages=640–654 |jstor=20029719|doi=10.2307/20029719 }}</ref> 그리고 그는 동유럽 지역에서 소련의 수정주의를 격렬하게 비판하던 알바니아의 [[엔베르 호자]]({{llang|sq|Enver Hoxha}})와 협력하게 된다. 엔베르 호자는 스탈린 정식을 따르는 철저한 스탈린주의자로, 소련의 수정주의를 비판하는 마오쩌둥의 사상을 받아들였고, 그 결과 교류가 오가면서 마오쩌둥 사상은 '아시아의 반수정주의'로 거듭나게 되었다.<ref>{{저널 인용|last=Marku|first=Ylber|date=2019-05-30|title=Communist Relations in Crisis: The End of Soviet-Albanian Relations, and the Sino-Soviet Split, 1960–1961|url=https://doi.org/10.1080/07075332.2019.1620825|journal=The International History Review|volume=0|issue=0|pages=1–20|doi=10.1080/07075332.2019.1620825|issn=0707-5332}}</ref> 이는 1964년 7월, 흐루쇼프에 대해 논평한 마오쩌둥의 입장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Quotation|흐루쇼프가 소련공산당과 국가의 지도자가 된 이래로, 그는 수정주의 정책의 모든 과정을 밀어부쳐 자본주의 세력의 성장을 크게 촉진하였고, 소련 내에서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 사이의 계급투쟁 그리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길 사이의 투쟁을 또 다시 첨예하게 만들었다. 지난 몇 년간의 소련 신문 기사를 훑어보면, 소련 사회 내에 과거 착취 계급의 수많은 요소들이 존재하는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부르주아 세대의 요소가 거대한 규모로 존재하며, 계급 양극화가 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많은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전 인민의 소유인 쏘비에트 기업 내에서의 다양한 부르주아적 요소들을 살펴보자. "국가 소유의 공장에서 지도적 관리들과 그 무리들은 그들의 지위를 남용하여 공장 설비와 재료를 사적 생산을 위한 '비밀 작업장'을 설치하는 데에 사용하고, 생산물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고 이권을 나누었다." …(중략)… 이제 집단농장에서 다양한 부농 분자들의 활동을 살펴보자. "몇몇 지도적 위치에 있는 집단농장 관리들과 그들의 무리들은 집단농장 자산을 마음대로 훔치고 투기했으며, 자유롭게 공적자금을 탕진하고 사취했다."|[[마오쩌둥]], 『9차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에 공개장에 대한 논평』에서<ref>마오쩌둥, 흐루쇼프의 거짓 공산주의와 그 역사적, 세계적 교훈에 대하여: 9차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공개장에 대한 논평, 1964년 7월, 노동자정치신문 98호</ref>}}
 
마오쩌둥 사상에서 드러나는 반수정주의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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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사상은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재평가가 되었고, 기존의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계승 및 발전시킨 대표적인 사상으로 인식되었다. '공산당 ML파' 또는 'ML당' 등의 명칭을 갖고 있는 정당이 마오쩌둥 사상을 양대 사상으로 내놓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현재 반수정주의 국제 단체인 'ML당-ML조직 국제회의'(International Conference of Marxist–Leninist Parties and Organizations, ICMLPO)<ref name="fish">{{웹 인용|url=http://www.xinminnews.com/portal.php?mod=view&aid=63|title=国际毛主义运动历史与现状|accessdate=2012|publisher=新民通讯|work=|language=zh-hans|deadurl=yes|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41015153811/http://www.xinminnews.com/portal.php?mod=view&aid=63|archivedate=2014-10-15}}</ref>와 '혁명당-혁명조직 국제협력'(International Coordination of Revolutionary Parties and Organizations, ICOR)<ref name="FR">[http://icor.info/2010/ICOR%20Founding%20Conference_Documents_CD01_US.pdf#page=11] {{Web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10818071921/http://icor.info/2010/ICOR%20Founding%20Conference_Documents_CD01_US.pdf#page=11 |date=18 August 2011 }} ICOR Founding Conference – Documents US: Founding Resolution of the ICOR</ref>이 마오쩌둥 사상을 공식 이념으로 표방하고 있다.
 
=== 신민주주의 ===
[[마오쩌둥]]은 [[태평천국의 난]]을 시작으로 하여 [[신해혁명]]을 끝으로 [[중국]]이 반봉건-반자본주의(半封建半資本主義) 정체성(政體性)을 확보했다고 봤다. 그러나 앞선 단어에서 유추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완전한 자본주의로의 이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바로 여기서 [[마오쩌둥]]은 확고한 자본주의 사회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을 신삼민주의(新三民主義)라 칭하였고, 앞서 서술한 반봉건-반자본주의(半封建半資本主義)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구삼민주의(舊三民主義)라고 규정하였다.<ref>마오쩌둥 저, 이등연 역, 『마오쩌둥 주요 문선』(학고방, 2018) pp. 193 - 198(신민주주의론)</ref> 그러나, 신삼민주의자들의 염원은 열강 세력의 침탈을 통해 이루기 요원한 것이 되었다. 마오쩌둥은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새로운 형태의 인민정권을 구상하여 민족자본가와 노동자, 그리고 농민 세력이 연합된 신민주주의정부(新民主主義政府)를 건설하려고 한 것이다. 이러한 운동의 흐름을 '반제반봉건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反帝反封建資產階級民主革命)이라 칭한다. 이러한 그의 단계론 해석은 이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장하던 단계론과 상당히 다른 것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그는 바로 소비에트 사회주의 체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극좌모험주의적 경향과 당시의 권위주의적 군벌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반동적 의견을 모두 비판하였다.<ref>마오쩌둥 저, 이등연 역, 『마오쩌둥 주요 문선』(학고방, 2018) pp. 213 - 227(신민주주의론)</ref> 그리고 이러한 노선은 [[1930년대]] [[김일성]]이 이끌던 빨치산파에 의해 수용되었으며, 베트남의 독립운동가인 [[호치민]]도 또한, 이 노선을 받아들인다. [[대한민국]]의 경우는 [[1980년대]] [[민족 해방]] 학생운동계파가 한국 사회의 성격을 이 노선에 기반하여 해석했으며, [[민중 민주]] 계파의 사회구성체론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