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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호의'''(方好義, ? ~ ?)는 [[조선]] 중기의 문신, 정치가이다. 본관은 [[온양 방씨|온양]](溫陽), 자(字)는 의지(宜之)이다. 아버지는 증 [[병조]][[판서]] [[방윤]](方輪)이고, 부인은 [[조선]] [[조선 세종|세종]](世宗)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臨瀛大君)의 고손녀이다.
 
==생애==
[[1514년]](중종 9)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을 시작으로, 1520년 부령부사, 1522년 만포첨사, 1524년 정평부사가 되었다. [[1525년]] 전라좌도수군[[절도사]], 회령부사, 1536년 경상우도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다. 1540년 상호군(上護軍), 1542년 충주목사, 1544년 경상우도수군절도사에[[경상우도]][[수군절도사]]에 이어 가덕도축성사[[가덕도]]축성사(加德島築城使)가 되었다.<ref>『중종실록(中宗實錄)』</ref> 1545년(명종 즉위년) [[충청도]]수군[[절도사]]가 되고, 1549년 첨지(僉知) 등을 지냈다. [[1550년]](명종 6년) 겨울 [[평안도]][[병마절도사]] 겸 영변대도호부사로 부임하였다.<ref> 《영변지》, 官師表 pp.135</ref> 평안도병마[[절도사]] 재임 시절 평안도관찰사 [[조광원]](曺光遠)과 함께 언관들의 탄핵을 받았으나 [[조선 명종|명종]]이 윤허하지 않았다.<ref>『명종실록』 11권, 6년(1551 신해 / 명 가정(嘉靖) 30년) 3월 22일(경술) 3번째 기사</ref>
 
[[1554년]]([[조선 명종|명종]]9년) [[4월 25일]] 방호의(方好義)는 정2품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에 제수되었다.<ref>[http://sillok.history.go.kr/id/kma_10904025_001 《명종실록》 16권, 명종 9년 4월 25일 을미 1번째기사]</ref> 이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고,<ref>[http://sillok.history.go.kr/id/kma_10905019_003 《명종실록》 16권, 명종 9년 5월 19일 무오 3번째기사]</ref> 1556년 청홍도병마절도사(淸洪道兵馬節度使)가 되었다. 문인이었으나 무재(武才)에도 뛰어나서 왜구와 여진족 방어에 공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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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수군절도사]]
[[분류:16세기 한국 사람]]
[[분류:조선의 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