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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선수 정보
|선수명 = 김한수
|영문 표기 = Kim Han -Soo
|소속 구단 =
|등번호 =
|출신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생년월일 = {{출생일과 나이|1971|10|30}}
|사망일 =
|신장 = 186
|체중 = 88
* [[2002년 아시안 게임]] 금메달
|계약금 = 3억원
|연봉 = 2억원 (2018년)
|경력 = <nowiki></nowiki>
'''선수 경력'''
{{메달 끝}}
 
'''김한수'''(金翰秀, [[1971년]] [[10월 30일]] ~ )는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내야수]]이자,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이다이다. 그의 아버지는 1950년대 [[대한민국]] 실업 야구를 주름잡았던 내야수 김영복이다.
 
기복 없이 꾸준하고 안정된 수비, 정교한 타격 실력을 보여 준 선수로서 준수한 [[3루수]]로 꼽힌다. 연고지인 대구 출신은 아니지만 [[삼성 라이온즈|삼성]]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 중 한 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실력은 매우 뛰어나지만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에 항상 튀지 않는 모습으로 인해 "소리 없이 강한 남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ref name="kbsn">[[KBS N Sports]]《[[아이 러브 베이스볼]]》〈[http://www.kbsn.co.kr/sports/only23.php 레전드] {{웨이백|url=http://www.kbsn.co.kr/sports/only23.php |date=20131213055708 }}〉, 2010년 9월 [http://www.kbsn.co.kr/live_vod/vod_list.php?prgid=36873960&ch_userid=kbsn_sports&category=32658352 14]{{깨진 링크|url=http://www.kbsn.co.kr/live_vod/vod_list.php?prgid=36873960&ch_userid=kbsn_sports&category=32658352 }}, [http://www.kbsn.co.kr/live_vod/vod_list.php?prgid=36873977&ch_userid=kbsn_sports&category=32658352 15]{{깨진 링크|url=http://www.kbsn.co.kr/live_vod/vod_list.php?prgid=36873977&ch_userid=kbsn_sports&category=32658352 }}일 2회 연속 방송.</ref><ref name="park2" />
 
== 선수 시절 ==
=== 아마추어 시절 ===
초등학교 재학 시절 당시 한창 인기를 누리던 프로 야구를 접하면서 야구 선수에 대한 꿈을 키웠고, 5학년 때부터 야구부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했다. 그는 [[광영고등학교 (서울)|광영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야구 선수 생활을 하던 중 자신의 우상이었던 [[빙그레 이글스|빙그레]]의 [[장종훈]]을 1학년 때 만났는데, 그때그 때 그에게 실질적인 조언을 많이 들으면서 프로 입단을 목표로 열심히 준비하였다.<ref name="kbsn" /><ref name="park1">스포츠 춘추 - 2008년 4월 [[박동희 (기자)|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003 "삼성의 김한수"]</ref><ref name="park2">스포츠 춘추 - 2008년 4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006 "김한수, 아버지는 등으로 말한다"]</ref>
 
=== [[삼성 라이온즈]] 시절 ===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할 당시 주목받지 못했던 그는 [[1994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도드래프트에서도 역시 큰 기대를 갖지 않았다. 낮은 지명 순위로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그는 의아하다 싶을 정도로놀랍게도 [[삼성 라이온즈]]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았다.<ref name="kbsn" /><ref name="park1" />
[[1994년]] 시즌 팀의 [[1루수]] [[김성래]], [[2루수]] [[강기웅]], [[유격수]] [[류중일]], [[3루수]] [[김용국 (야구인)|김용국]]으로 이어지는 리그 최고 수준의 내야 수비진에서 그는 뛸 자리가 없었다. 하지만 [[김용국 (야구인)|김용국]]이 [[태평양 돌핀스]]로 트레이드되면서트레이드되며 기회가 생겼고, 당시 감독이었던 [[우용득]]은 신인이었던 그를 과감하게 기용하였다기용했다. 프로 입단 첫 해 2할대 타율과타율, 10홈런을 기록하며 준수한 모습을 보여 준 그는 [[병역]] 의무로 인해 다음해 방위병으로 2년간 복무를 이행하였다복무했다. 1995년 ~ 1996년1996년에 동안 그는 [[무릎]] 부상을 당하면서당하며 방위 복무 기간 동안 힘들게 재활 훈련을 했다. 부상 회복과 동시에 [[1996년]] 5월에 제대한 그는 1군 주전 자리를 꿰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였고노력했고, 1997 시즌 [[이승엽]]과 함께 [[삼성 라이온즈]]의팀의 신예 스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ref name="kbsn" /><ref name="park1" /><ref>[[데일리안]] - 2009년 8월 기사 [http://www.dailian.co.kr/news/n_view.html?id=96967&sc=naver&kind=menu_code&keys=7 "‘은퇴’ 김한수… 1997년 그리고 세대 교체"]</ref> 방위 복무 기간이었던 1995 ~ 1996년을 제외하고 매년 100경기 이상 출장하였다출장했다.
1998~1999, 2001~2002 시즌에는 3할 이상의 타율과 두 자릿수 홈런을 쳐 내며 전성기를 구가하였고구가했고, 특히 수비력을 인정받으며 2004 시즌까지 골든 글러브를 무려 6번이나 수상하였다수상했다. 특히 그 중 2001 ~ 2004 시즌 4회 연속 수상 기록은 [[한대화]]의 6회에 이어 해당 포지션 2위 기록이었다. [[2002년]] 시즌에는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며 구단 역사상 최초로 정규 시즌 1위와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뤄냈다.<ref>매일신문 - 2009년 8월 기사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37060&yy=2009 "삼성 ‘골고루 한 방’이 4강권 이끈다"]</ref> [[2000년 하계 올림픽 야구|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2002년 아시안 게임|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선발된 그는 좋은 활약을 펼치며 각각 동메달과 금메달을 따는 데에 공헌하기도 했다공헌했다.<ref name="kbsn" /><ref name="park1" />
팀의 주장 자리를 후배 [[진갑용]]에게 물려 준물려준 뒤 팀 내 대선배로서 어린 후배들과 함께 2005 ~ 2006 시즌 연속으로 정규 시즌 및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일궈냈다. 그러나 [[2004년]] 시즌 후 체력이 조금 떨어졌다고 판단한 코칭 스탭은 [[2005년]] 시즌부터 그를 [[3루수]]에서3루수에서 [[1루수]]로1루수로 포지션을 변경시켰다. 그의 타율은 2005 시즌 2할 9푼대를 기록한 후 점차 떨어지기 시작하여시작해 [[2007년]] 시즌에 2할 3푼대까지 하락하였다하락했다.<ref name="park1" /> 그는 2007 시즌 후반에는 그 해 특별 지명을 받아 입단한 [[채태인]]에게 [[1루수]] 자리마저 위협받았고, 2군으로 강등되는 등 수모를 겪으며 힘든 선수 생활을 보냈다.<ref name="park2" /> 2007 시즌 후 고민을 거듭한 끝에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선언했다.
 
== 야구선수 은퇴 후 ==
[[2008년]] 시즌부터 2군 타격 코치로 활동했다.<ref>매일신문 - 2008년 1월 기사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088&yy=2008 "대표적 삼성맨 양준혁·김한수… 새해엔 ‘각자의 길’"]</ref><ref>[[스포츠 칸]] - 2008년 1월 기사 [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801082101586&sec_id=510201 "김한수 ‘연봉킹’… 3억 5,000만원 도장 코치진 최고 등극"]</ref> 그의 공식 은퇴식은 [[2008년]] [[3월 30일]] [[KIA 타이거즈|KIA]]전에 앞서 치러졌다.<ref>[[스포츠 서울]] - 2008년 3월 기사 [http://www.sportsseoul.com/news2/baseball/pro/2008/0330/20080330101010100000000_5369772897.html "김한수 은퇴, 야구 선수로서 행복했었다"]{{깨진 링크|url=http://www.sportsseoul.com/news2/baseball/pro/2008/0330/20080330101010100000000_5369772897.html }}</ref> 자신의 등번호 5번은 현역 은퇴 후 후배 [[내야수]] [[조동찬]]에게 물려주었다물려줬다.<ref name="kbsn" />
[[2009년]]에는 [[일본 프로 야구]] [[센트럴 리그]] 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으며 2군 타격 코치로 1년 간1년간 몸담은 후 귀국했다. [[2010년]] 시즌부터 다시 [[삼성 라이온즈]] 2군 타격 코치를 맡았고<ref>[[일간 스포츠]] - 2010년 9월 기사 [http://isplus.joins.com/article/article.html?aid=1501719 "삼성, 프랜차이즈 스타 대접 ‘톡톡’"]</ref> [[2011년]] 시즌부터 1군 타격 코치를 맡았다. [[2016년]] [[10월 15일]]에는 [[류중일]]의 후임으로 [[삼성 라이온즈]]의 제 14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그러나 김한수는 감독으로서의 기본 자질을 보여주지 못하고 비판을 받고 있다선임됐다.
 
==기록==
프로 야구 선수로서 14시즌동안14시즌 동안 통산 1500 안타를1500안타를 쳤다. 또한 통산 끝내기10개의 안타끝내기 10개로안타로 이 부문 1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ref name="kbsn" /><ref name="park2" />
 
== 수상 · 타이틀 경력 ==
== 출신 학교 ==
* [[서울강남초등학교]]
* 서울 [[신월중학교 (서울)|신월중학교]]
* 서울 [[광영고등학교 (서울)|광영고등학교]]
* [[중앙대학교]]
 
[[분류:살아있는 사람]]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분류:서울특별시 출신]]
[[분류:KBO 리그 내야수]]
[[분류:KBO 리그 1루수]]
[[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
[[분류: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
[[분류:KBO 리그 감독]]
[[분류:삼성 라이온즈 감독]]
[[분류:한국 프로 야구 1500안타 클럽]]
[[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
[[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
[[분류:서울특별시 출신]]
[[분류:신월중학교 (서울) 동문]]
[[분류:서울강남초등학교 동문]]
[[분류:신월중학교 (서울) 동문]]
[[분류:광영고등학교 (서울) 동문]]
[[분류:중앙대학교 동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