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성룡: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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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경]]이 죽음에 이르러 일부 [[사림]]을 자처하는 자가 당파를 만들어 조정을 위기로 몰고 갈 것이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이]]와 함께 그는 [[이준경]]의 상소가 잘못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이이]]가 계속 [[이준경]]을 공격하며 '죽음에 이르러 그 말이 사악하다'고 성토하자, [[사림]]에서 [[이준경]]의 삭탈관직을 청하는 상소를 계속 올렸다. 그는 이무렵 이조 정랑이 되어 [[이준경]](李浚慶)의 관직을 삭탈함이 옳지 않음을 주장하였으며, 인성(仁聖) 대비가 죽었을 때 예조에서 기년설(朞年說)을 주장하였으나 류성룡은 [[조선 선조|선조]]가 [[조선 명종|명종]]의 후계자 자격으로 왕위를 이었음을 주장하며 적손(嫡孫)의 예를 따라 3년설이 타당함을 주장하여 그대로 시행되었다.
 
== 가족 관계 ==
 
**** 처 : [[전주 이씨]](全州 李氏) - 광평대군 5세손 용궁현감(龍宮縣監) 이경(李坰)의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