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박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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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창원박씨(昌原朴氏) 관향조(貫鄕祖)는 고려사람 박유화(朴有華)의 증손자 박령(朴齡, 1325 ~ 1434년)을 시조로 한다. 조선조에 판사재(判司宰)·호조전서(戶曹典書)·판통례(判通禮)·병조참의(兵曹參議) 등을 역임하고, 외직으로는 1398년(태조 7) 강주진첨절제사 겸 강화부사(江州鎭僉節制使兼江華府使)가 된 뒤 강계절제사·경원삭주병마사·홍주목사 등을 거쳐 1419년(세종 1) 황해도도절제사 겸 판해주목사가 되었으며, 1421년 좌군도총재(左軍都摠制)에 올랐다. 시호는 양정(襄靖)이다.
''창원박씨(昌原朴氏) 관향조(貫鄕祖)는 신라(新羅) 경명왕(景明王)의 첫째 아들이던 밀성대군(密城大君) 박언침(朴彦沈)의 12세손인'박유화(朴有華)의 증손자'[[박령]]'(朴齡, 1325 ~ 1434년)을 파조로 하는 밀양(밀성)박씨 12중조 중의 한 분으로 창원군(昌原君)에 습봉되고 옥천의 원덕사와 밀양의 경현사에 배향 되었다.
조선조에 판사재(判司宰)·호조전서(戶曹典書)·판통례(判通禮)·병조참의(兵曹參議) 등을 역임하고, 외직으로는 1398년(태조 7) 강주진첨절제사 겸 강화부사(江州鎭僉節制使兼江華府使)가 된 뒤 강계절제사·경원삭주병마사·홍주목사 등을 거쳐 1419년(세종 1) 황해도도절제사 겸 판해주목사가 되었으며, 1421년 좌군도총재(左軍都摠制)에 올랐다. 시호는 양정(襄靖)이다.
 
== 외부 링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