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위목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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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위목제'''(黎威穆帝, [[1488년]] [[6월 14일]] ~ [[1509년]] [[1월 10일]])는 [[대월베트남]] [[후 레 왕조]]의 제8대 황제군주(재위: [[1505년1504년]] ~ [[1510년1509년]])이다. 성명은 '''레뚜언'''({{vie|v=Lê Tuấn|hn=黎濬|eum=려준}})이고, 《명실록(明實錄)》과 《명사(明史)·안남전(安南傳)》의 기록에 따르면 레후옌(黎諠)이라고도 한다. [[시호]]는 위목제(威穆帝)이다. [[레 헌종]]의 둘째 아들로, [[레 숙종]]의 서형이다.
 
== 생애 ==
위목제는 주색을 탐닉했고 폭정을 자행하였으며, 어머니인 소인황태후(昭仁皇太后) 응우옌티껀(阮氏瑾)의 형제인 응우옌쫑(阮種), 응우옌바탕(阮伯勝)을 총애하고 신뢰하였다. 태황태후 응우옌티항(阮氏恒)과 예부상서(禮部尙書) 담반레(覃文禮), 도어사(都御史) 응우옌꽝밧(阮光弼) 등 그를 옹립하길 원하지 않은 자들은 모두 그에게 살해되었다. [[명나라]]의 사신 허천석(許天錫)은 그를 풍자하여 '귀왕(鬼王)'이라고 불렀고, "안남 4백년의 운수는 매우 긴데, 하늘은 어찌하여 귀왕을 내려보냈단 말인가.(安南四百運尤長/天意如何降鬼王)"라는 내용의 시를 지었다.
 
위목제는 종친들을 잔인하게 살해하여 많은 종친들의 반감을 얻었다. [[1509년]], 위목제는 숙부인 [[레떤]]의 모든 아들을 살해하였는데, 간수공(簡修公) [[레 양익제|레오아인]] 만이 옥졸에게 뇌물을 주고 도주할 수 있었다. 위목제는 자신을 보호하는 시위(侍衛)들을 고용했는데, 그 중에는 이후 [[막 왕조]]를 세우는 [[막당중]]도 있었다. 막당중과 위목제는 사이가 매우 가까웠고, 위목제는 막당중을 천무위도지휘사(天武衛都指揮使)로 승진시키니 막당중은 위목제의 재위기간 동안 매우 세력이 커졌다. 한편 레오아인은 다른 대신들과 함께 거병하여 위목제에게 반기를 들었다. [[1509년]], 위목제가 죽었는데, 사인은 명확하지 않다. [[대월사기전서]]에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레오아인에게 사로잡힌 뒤 짐독을 먹고 자살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도망 중에 살해되었다는 것이다. 명사 외국전2에는 응우옌쫑이 위목제를 핍박하여 자살하게 한 뒤 동생인 응우옌바탕을 황제로 옹립하였고, 위목제를 민려공(愍厲公)으로 깎아내렸다가 이후 레꽝(黎廣)이 응우옌바탕을 주살한 뒤 레오아인을 옹립했다고 나와 있다.
 
{{전임후임
|전임자= [[레 숙종|숙종]]
|후임자= [[레 양익제|양익제]]
|직책= [[대월]] [[후 레 왕조]]의 황제
|대수= 8
|임기= [[1505년]] ~ [[1510년]]
|앞이름= 전 임
|뒤이름= 후 임
}}
{{후 레 왕조의 군주}}
 
[[분류:1488년 태어남]]
[[분류:1509년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