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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증명하는 문헌이 있는데 "선묘중흥지(宣廟中興誌)"<ref>안위등이 배를 돌려 들어서서 적을 대항하자 적이 개미 때처럼 붙어 안위의배가 거의 침몰하게 되므로 이순신이 배를 돌려 그것을 구원하고 그 자리에서 적선 두 척을 쳐부수고 잠시 동안에 삼십척을 연달아 깨뜨리며 그 선봉장의 목을 베니 적이 크게 놀라 물러 갔다.
이순신이 적의 머리를 달아 매고 배 위에서 풍악을 치며 도전하니 적이 분노하여 군사를 나누어 교대로 나오는데 이순신은 승리한 기세를 타고 불을 놓아 여러 배들을 불태우니 시뻘건 불길이 바다를 덮은 속에서 불에 타고 물에 빠져 죽는 적병이 그 수를 알 수 없었으며 마침내 래도수를 죽이고 모리민부는 물에 떨어져서 죽음을 겨우 면했고 그 밖에도 적장의 죽은자가 몇 명 있었다./선묘중흥지(宣廟中興誌):1587년(선조 20)부터 1607년(선조 40)까지 임진왜란의 전말, 극복 과정, 전후 교섭 등을 기술한 책.</ref>에는 마다시로 추정되는 일본군의 선봉장이 효수되었으며 "래도수"는 통제사가 화공으로 일본 수군을 공격할때에 사망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마다시(칸 마타시로 마사케가)"로 추정되는 인물과 "래도수(구르시마 미치후사)"를 서로 다른 인물로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난중일기에 기록된 명량해전은 통제사가 이끌고 해상에서 전투를 벌인 기록일뿐 "임하도의 좁은목"주변이나 해안가에서 발생한 전투기록은 빠져있음을 증명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난중잡록의 저자인 의병장 조경남은 마다시와 내도수를 혼돈했을 가능성이 높다. 효수된 왜장은 마다시이며 내도수는 효수되지 않은것으로 봐야 한다.
 
=== 오익창의 사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