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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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273년간 재건하지 못하다가 [[1865년]] [[4월 26일]](고종 2년 [[음력 4월 2일]]) [[대한제국 고종|고종]]의 수렴청정을 하던 [[신정왕후 (조선)|신정왕후]]의 지시로 중건이 시작되어<ref>《고종실록》(권2 고종2년 4월2일)</ref> 같은 해 [[5월 7일]]([[음력 4월 13일]]) 공역이 시작되어 1868년 6월 말에 공사를 마쳤으며, 7월 2일 국왕과 왕실의 경복궁 이어(移御)<ref>임금이 거처하는 곳을 옮긴다는 뜻이다.</ref>가 이루어져 정무를 개시하였다.<ref name="yi43"/> 경복궁의 재건을 주도한 [[흥선 대원군]]은 권력을 장악하였다. 공사를 마치기까지 [[당백전]]을 발행하는 등 7년이 넘게 걸렸는데, 경복궁에는 다른 궁궐과 마찬가지로 [[승정원]], [[홍문관]] 등 기타 여러 관아가 정비되어 있었다.<ref name="글로벌2" />
 
중건된 경복궁의 많은 건물은 그 뒤 몇 차례 소실되고 복구되기를 반복하였다.<ref name="yi43"/> 고종 32년(1895년) 경복궁 건청궁에서 [[명성황후]]가 일본군에 시해당하고(1895년 을미사변), 이듬해 양력 2월에는 고종이 [[아관파천|러시아 공관으로 파천]]하면서 경복궁은 왕궁으로서 운명을 다하게 된다.<ref name="yi43">이상해, 2004, p.43.</ref>의무감을잃었다
1900년경복궁은 일본에의해 점령됬다
임진왜란때소실된것을 중건하였으나
명성황후가나라돈을막써서 흥선대원군이
어쩔수없이백성들의돈을강제로뺏어당백전을만들었다
 
=== 일제강점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