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대장공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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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왕과의 사이에서 2남 1녀를 낳았다. 그러나 장남 충선왕을 제외한 나머지 1남 1녀에 대해서는 낳았다는 기록만 있을 뿐<ref name="mama" /><ref name="son">《고려사》권89〈열전〉권2 - 제국대장공주 - 원성공주가 충렬왕과 함께 원에 입조하다가 되돌아오다</ref>, 그 생애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충렬왕 사후 충선왕부터 [[고려 창왕|창왕]]까지 모두 공주의 후손으로 왕통이 이어진다<ref group="주">고려의 마지막 왕인 [[고려 공양왕|공양왕]]은 신종의 7대손이다.</ref>. 그리고 며느리인 [[계국대장공주]]는 제국대장공주의 조카인 [[원 현종]](진왕<ref group="주">晉王. 이름은 카말라(甘麻剌)이다.</ref>)의 딸로 공주의 종손자가종손녀가 되는 등, 제국대장공주 이후로 등장하는 원나라 출신의 왕비들도 모두 그녀와 혈족 관계에 있다.
 
한편 정화궁주의 소생인 [[강양공]] 왕자는 원래 충렬왕의 장남이나, 원나라 공주의 소생이 아니라는 이유로<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891029&categoryId=2852 《동국통감》권42 고려기 1313년]</ref> 왕위에 오르지도 못한 채 [[충청도]] [[아산시|아주]](牙州)<ref group="주">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시]]이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658908&mobile&categoryId=1588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아주〉항목] 참고</ref> 에 있는 [[동심사]](東深寺)에 출가해야 했다<ref>《고려사》권91〈열전〉권4 - 강양공 - 강양공 왕자가 동심사에 출가하였다가 환속하다</ref>. 그러나 강양공의 차남인 [[왕고]]는 충선왕의 총애를 받아 나중에 [[심양왕]]의 자리에 오를 뿐 아니라<ref>《고려사》권34〈세가〉권34 - 충선왕 5년 3월 - 왕이 심왕 자리를 세자 호에게 전하다</ref>, 이를 기반으로 하여 충선왕의 아들인 [[고려 충숙왕|충숙왕]]의 왕위를 넘보거나 원나라에 충숙왕을 무고하여 곤란하게 하기도 하였다<ref name="bookt">{{서적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