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린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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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고대에 지린성 동부의 삼림지대에는 [[퉁구스]] 계의 수렵민족이 거주했고, 성 중부의 평원지대에는 동이족 계열의한민족의 [[부여]]가 건국되었다.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고구려]]는 지린성을 서남부의정복하고 [[지안중국 지역을 (퉁화 시)|지안]]을 거점으로 하여지배하면서 일대 강국을 건설했다. 고구려는 기원전부터 [[668년]]까지 지린성의 대부분을 통치하였고,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에는 [[발해]]가 [[당나라]]를 몰아내고 [[698년]]부터 [[926년]]까지 이 지역을 통지했었다.정복하여 이후 지린성은 [[거란]]이 세운 [[요나라]]의 판도에 들어갔다지배했었다. [[여진족]]의 [[금나라]]와 [[몽골족]]의 [[원나라]] 역시 통치했었다.
 
청 초기에 [[영고탑]]이 지린으로 이주하면서 지린성이 설치되었다. 이 때에는 지린장군의 통치하에 있었는데, 이 시기의 지린성은 동쪽으로 현재 러시아의 프리모르스키 지방의 대부분을 통치하고 있었으며 [[동해]]에 맞닿아 있었다. 한족의 이주는 엄격히 금지되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