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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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대화재 (1666년)====
{{본문|런던 대화재}}
대역병이 휩쓸고 간 런던시에 또다른 대재앙이 닥치고 말았는데, 바로 [[런던 대화재]]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런던 대화재는 역병 해소에 기여하기도 하였다. 1666년 9월 2일 일요일 새벽 1시, 런던시 남부의 [[푸딩 레인]]에 있던 한 빵집에서 시작된 불은 동풍을 타고 주변으로 빠르게 번져나갔다. 주택을 부수어 불길을 잡는 방식으로 화재를 진압하려던 움직임은 시작부터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이틀간 타오르던 불은 화요일 밤에 바람이 다소 잦아들면서 수요일부터 누그러들게 되었고, 목요일에는 어느정도 불길이 잡히는 듯 보였으나, 같은날 저녁 [[템플]] 일대에서 불길이 다시 치솟았다. 화약을 써서 일부 가옥을 한번에 터뜨려 철거하는 방법까지 동원된 끝에서야 화재가 완전히 진압될 수 있었다. 이후 화재를런던 대화재를 기리기 위해위한 [[런던 대화재 기념비|기념비]]가 조성되었는데, 기념비 명문에는 화재의 원인이 '가톨릭교도의 광란' (Popish frenzy) 탓이라는 문구가 약 150여년간 새겨져 있었다있기도 했다.<ref>Peter Ackroyd, ''The great fire of London'' (U of Chicago Press, 1988)</ref>
 
[[File:John Evelyn's plan for the rebuilding of London after the Great Fire.JPG|thumb|350px|대화재 이후 [[존 이블린]]의 런던시 재건 계획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