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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본태합기====
회본태합기(일본 에도시대)명량해전도에 그려진 섬은 임하도(林下島)이다. 이 문서에 수록된 그림을 임하도 실사진과 비교를 해보면 명량해전의 위치가 임하도임을 누구나 판별할 수 있다. 판옥선과 작은 전선까지 합하면 약 8-9척의 조선 수군이 임하도의 좁은 수로를 틀어막고 있음을 그리고 있다. 민간인 배도 동원이 된듯 하다. 또한 난중일기에 기록처럼 통제사는 7척의(난중일기 6척과 선조실록의 배흥립) 판옥선으로 닻을 올리고 임하도를 우회하여 바다로 나아가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던 것이다. 따라서 철쇄설(鐵鎖說)은 부정되며 진도와 해남 사이의 울돌목설(鬱陶項說)도 부정된다. 또한 양도-학동리설도 부정되며 기타 다른 학설도 부정된다. 회본태합기에는 조선 수군이 임하도의 좁은 목(項)을 막기 위해서 돛대를 앞으로 눕힌것이 보인다. 삿대 역할이라 보면 맞을 것이다. 따라서 철쇄가 아니라 돛대로 봐야 한다. 먼거리서 보면 철쇄와 돛대가 혼돈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1872년 진도지방지도====
1872년에 발행된 진도 지방 지도에는 명량해전 위치를 정확히 기술하고 있다. 이 지도에는 오양탄(嗚洋灘)이 기재되어 있으며 충무공이 왜적을 크게 무찌른 곳임을 알려주고 있다. 오양탄(嗚洋灘)은 울돌목(鬱陶項)과는 내포하는 의미가 다르므로 서로 다른 장소를 가르킨다. 이 지도에는 오양탄(嗚洋灘)의 위치가 우수영 경계 밖에 있음을 표시하고 있다. 이것은 우수영 성벽을 기준으로 삼은것인데 오늘날의 "서상리"가 경계지점으로 파악된다. 따라서 충무공이 왜적을 크게 무찌른 오양탄(嗚洋灘)은 오늘날의 "전남 해남군 문내면 예락리"에 위치에 있음을 지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지도 맨위에 첫번째산은 "일성산"으로 판단된다. 일성산 옆으로 홍색으로 통행로가 그려져 있는데 오늘날에도 이 통행로는 "성산교차로"와 "이목교차로"가 연결된 "관광레저로"이다.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 지리지 종합정보[http://kyu.snu.ac.kr/geo/main/main.jsp 서울대규장각지리]"에서 열람하실수 있다.
[[파일:1872년에발행된진도지방지도일부.jpg|섬네일|1872년에 발행된 진도 지방지도의 일부분(된 진도 지방지도의 일부분(고종 9년)]]
 
== 명량 해전에 참전했던 일본 병력에 대한 논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