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성왕: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태그: m 모바일 웹
태그: m 모바일 웹
55번째 줄:
 
== [[고구려]]의 건국과 발전 ==
[[부여]]에서 자란 [[주몽]]은 총명하고 활을 잘 쏘아 촉망을 받던 중 [[대소왕|대소]](帶素) 등 [[금와왕]]의 일곱 아들이 그 재주를 시기하여 죽이려고 하자 화를 피하여 이주하였다.
 
[[대소왕|대소]]의대소의 위협에서 무사히 벗어난 [[주몽]]은주몽은 유유히 [[남쪽]]으로남쪽으로 향하여 마침내 이 [[졸본]]에 정착하여 [[졸본]] (이름 미상, 건국 설화 중에 다른 설화에는 [[연타발]]이라고 되어 있다)의 둘째 딸(이름 미상, 건국 설화 중에 다른 설화에는 [[소서노]]라고 되어 있다)과 결혼하여 점차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한다.
 
[[기원전 37년]], [[주몽]]은주몽은 졸본 부여왕의 뒤를 이어 [[고구려]]를 건국했다. '고'씨로 전해 지지만 [[주몽]]의주몽의 원래 성씨는 아버지인 [[해모수]]에 따른'해'씨 이며, 고구려 태조왕 당시
계루부 고씨가 집권하자 정통성을 위해 시조인 [[주몽]]의주몽의 성씨를 '고'씨로 바꾸었다. 그리고 국가의 위상을 일신하기 위해 대대적인 영토확장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ref>[[기원전 37년]]~:《[[:s:[[삼국사기]]/[[신라본기]]/제1권#[[혁거세 거서간]]|[[삼국사기]]》([[신라본기]] 제1권, 二十一年...이하) 참조.</ref> [[주몽]]은주몽은 영토확장을 위해서는 우선 변방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변방에 살고 있던 [[말갈족]] 부락을 평정하여 [[말갈족]]이말갈족이 더이상 국경을 넘보지 못하도록 하였다. 또한 [[기원전 36년]]에는 [[비류]]수 상류에 있던 [[비류국]](沸流國, ‘송양국’이라고도 한다)의 왕 [[송양]](松讓)에게 활쏘기 경쟁으로 이겨서 항복을 받아내어 ‘옛 땅을 회복했다.’라는 뜻의 [[고구려]]말인 다물(多勿)로 개칭하고, [[송양]]을송양을 그곳의 도주로 삼았다.
 
[[비류]]국을비류국을 정복한 [[주몽]]은주몽은 [[기원전 34년]] 마침내 [[졸본성]]과 궁궐을 완성하여 나라의 위상을 한층 높였다. [[기원전 32년]]에는 오이(烏伊)와 부분노(扶芬奴)를 보내 태백산([[백두산]]) 동남쪽에 있던 행인국(荇人國)을 정복하였으며, [[기원전 28년]]에는 부위염을 보내 [[북옥저]]를 정복하였다.
 
[[기원전 24년]] 가을 음력 8월에 [[부여]]에 남아있던 [[주몽]]의주몽의 어머니 [[유화 (부여)|유화]]이 죽었다.
 
== 평양의 동명왕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