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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과 최후 ====
{{참고|임진왜란}}
[[1592년]](선조 25년) 7월 임진왜란 때 부름을 받아 왕을 의주(義州)까지 호종하였다. 이때 이산해가 피난설을 주장한 것을 빌미로 [[서인]]에서 그를 탄핵하여 파면시켰으므로 정철은 쉽게 복귀할 수 있었다. 그외에도 선조실록에는 복귀한 정철이 선조의 강계 피난을 강계의 사정을 설명하며 반대하는데 9월 일본군이 아직 평양 이남을 점령하고 있을 때 충청·전라도의 체찰사를 지내고, 이듬해 평양을 되찾은 뒤 [[1593년]] 1월에 복귀하였다. 그러나 정철은 위기 상황에서 술에 취에 긴급회의에 참석하지 않는등 업무에 태만했고 그일로 [[남인]]과 [[북인]]들의 비난을 받는다. 그해 5월 평양·개성·서울을 회복한 일로, 조선에 5만 군사를 보낸 [[명나라]] 대한 [[사은사]](謝恩使)로 임명되어 [[베이징 시|연경]](燕京)에 다녀왔는데 이자리에서이 자리에서 일본군이 모두 철수철수했다는 했다는 거짓 정보를 넣는 엄청난 사고를 치고 이언급이 일로화근이 그는되어 동인들의 공격을 받아 사직하고, 전란 중에 [[강화도]]의 송정촌(松亭村)에 우거(寓居)하였다.그리고 그해 [[12월]]에 강화도에서 병으로 사망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 향년 58세였다.
 
== 사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