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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인의 공세와 유배 ====
서인인 [[이해수]]와 [[이성중]]이 광해군을 세자로 세워야 한다는 성를 올렸고, 뒤따라 정철에 대한 동인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ref name="dyd151"/> 유생 [[안덕인]](安德仁) 등 5명이 상소를 올려 '정철이 [[국정]]을국정을 그르쳤다'고 공박했다. 선조가 그들을 불러 어떤 일이 국정을 그르친 것이냐 하고 묻자 이에 [[안덕인]] 등은 '정철이 대신으로서 술을 좋아하고 여자를 좋아하니 반드시 나라 일을 그르친 바가 많을 것입니다.<ref name="dyd151"/>'하고 대답했다. 그러나 선조는 그러나 '주색이 어찌 나라를 그르친 것이냐'고 반문했지만<ref name="dyd151"/> 그에 대한 동인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이어 [[사간원]]에서 합사하여 선조에게 고했다.
 
{{인용문2|정철은 성품이 편벽하고 의심이 많아서, 저와 같은 이는 좋아하고 저와 다른 이는 미워할 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을 끌어올려서 사당을 널리 펴니, 그 문하에 모여드는 무리가 밤낮으로 저자를 이루고, 조정의 기강을 제 마음대로 희롱하며 함부로 행합니다. ...(이하 생략)... 또 [[송한필]] 형제와 심복이 되어 시골 집에 머물게 하고, 그들을 잡아들이라는 명이 있어도 말을 꾸며서 대죄하고는 오히려 숨겨두고서 같이 계책을 꾸미고, 위에서 판결한 [[송사]]도 관원을 협박하여 판결을 고치려 하였으며, 정암수 등을 잡아올 때에도 그들을 구해줄 계교를 교묘히 꾸며서 비밀히 중로에서 지체시켜 곧 신문을 받지 않게 한 후 대간을 시켜서 그들에게 죄주는 것을 반대하게 하고, 선비를 시켜 그들을 구출하기를 청하는 소장을 올리게 하였습니다. 더욱이 주색에 빠져 [[명분]]과명분과 [[체통]]을체통을 잃었으므로 백성들이 더럽게 여겨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겉으로는 농담처럼 하면서 실지로는 남을 시기하여 해치고, 그 속심이 낱낱이 드러나서 변명할 수 없게 되어도 오히려 두려워하고 조심하지 아니하고 부박함이 심하니, 청컨대 파직하소서.<ref name="dyd152">신정일, 《지워진 이름 정여립:조선사회사총서 6》, 가람기획, 2000,; 152페이지</ref>}}
 
선조는 즉각 [[교서]]를 내렸다. '옛적에 대신을 파직하여 내칠 때는 조당(조정)에 방을 붙여 천하에 널리 알렸으니, 이것은 그 죄상을 백성의 이목에 밝혀서 후인을 징계하기 위함이다. 지금 정철의 파직 전지를 조당의 방에 붙이게 하라.<ref name="dyd153">신정일, 《지워진 이름 정여립:조선사회사총서 6》 (가람기획, 2000) 153페이지</ref>는 명을 내렸다. 이에 양사에서 정철의 파직조서를 조당에 계시하기를 청했는데 승지 [[이항복]]만이 전지만을 받들어 계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양사에서 다시 '중간에서 왕명을 저지하고 실시하지 않았다'고 탄핵하여 파직시켰고, 조정 선비 중 정철과 관련있는 사람들을 모두 세 등급으로 나누었다.<ref name="dyd153"/> [[이항복]] 역시 귀양길에 오를 뻔했으나 겨우 면했고, 선조는 [[백유함]], [[유공신]]을 [[학관]]으로 천거했던 [[윤돈]] 등의 [[삭직]]을 명했다.<ref name="dyd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