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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임'''([[1421년]] ~ [[1484년]])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창녕, 자는 중경, 호는 일재 또는 안재이다. 참판 성석인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성엄이고, 아버지는 지중추부사 성염조이다. 동생은 예조판서를 지낸 용재 [[성현]]이다. 좌의정을 지낸 [[성세창]]의 숙부이기도 하다.
 
== 생애 ==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1448년]]에 주서가 되었고 [[1450년]]에는 성균관주부가 되었다. 문종과 단종 때도 계속 그 직위에 있다가 세조 때 원종공신이 되면서 예조정랑이 되었고 이후 [[1457년]]에는 춘추관기주관이 되었다. 이후 판사재감사를 거쳐서 [[1458년]]에는 당상관에 오르면서 첨지중추원사가 되었다. [[1459년]]에는 [[동부승지]]가 되었고 이후 [[우부승지]], [[좌부승지]]로 계속 승차한다. 그 이후에도 [[우승지]]로 계속 승차했고 이후 [[1460년]]에는 [[도승지]]가 되었다. 이후 [[1461년]]에는 [[이조참판]]으로 승차했고 [[1462년]]에는 [[공조참판]]으로 옮겼다. 이후 중추원부사로 옮겼다. [[1463년]]에 다시 [[공조참판]]이 되었고 [[1464년]]에는 전라도관찰사로 외직에 나갔다. 이후 [[형조참판]]으로 내직에 돌아왔고 동지중추원사로 있다가 [[1465년]]에 인순부윤을 거쳐서 [[1466년]]에는 [[호조참판]]이 되었다. 이후 [[형조판서]]가 되면서 정경의 반열에 올랐으며 이후 [[1467년]]에 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이후 [[지의금부사]]를 겸하게 되었으며, 이후 [[이조판서]]가 되었다. 이후 예종 죽위 후에 선위사로 중국에 다녀왔으며, 다시 [[1469년]]에 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성종 즉위 후에는 [[1471년]]에 [[공조판서]]가 되었다. 이후 진하사로 다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이후 [[1475년]]에는 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다. [[1476년]]에는 개성유수로 다시 외직에 나갔다. 이후 [[1478년]]에 다시 첨지중추부사가 되었다가 [[1479년]]에 다시 지중추부사가 되었다. [[1482년]]에는 [[의정부]][[좌참찬]]에 임명되었고 다시 지중추부사로 옮겼다. 이후 [[1484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 사후 ==
[[성임 묘 및 신도비]](成任 墓 및 神道碑)는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내포리에 있다. 2001년 12월 21일 파주시의 향토문화유산 제17호로 지정되었다.
 
== 가족 관계 ==
동생은 예조판서를 지낸 용재 [[성현]]이며 영의정 [[성준]]과도 친척 관계에 있다.
 
[[분류:조선의 문신]]
[[분류:1421년 태어남]]
[[분류:1484년 죽음]]
[[분류:조선의 문신]]
[[분류:창녕 성씨]]